[아주사설 | BTS아리랑에서 K-헤리티지 글로벌로]⑥ 설명하지 않았기에 통했다: BTS가 보여준 전통의 조건

방탄소년단이 ‘아리랑’을 무대와 앨범의 상징으로 꺼내 들었을 때, 그들은 설명하지 않았다.
아리랑이 어떤 역사적 맥락을 지녔는지, 왜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인지, 외국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해설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무대 위에 하나의 감정 구조를 올려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세계는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 장면은 오늘날 전통이 세계와 만나는 조건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통은 설명될수록 약해지고, 체험될수록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을 세계에 알리는 과정에서 ‘설명’을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삼아왔다. 역사적 유래와 문화적 의미, 상징의 맥락을 꼼꼼히 풀어내는 것이 글로벌 소통의 기본이라고 믿었다. 이는 한때 유효한 접근이었다. 낯선 문화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문화 환경이 달라지면서 이 전략은 한계에 부딪혔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전통은 감정이 아니라 지식의 대상이 됐고, 체험이 아니라 학습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그래픽지피티
[그래픽=지피티]


BTS의 선택은 이 오래된 공식에서 과감히 벗어났다. 그들은 아리랑을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아리랑이 수백 년 동안 작동해 온 감정의 리듬, 즉 이별과 이동, 상실과 재회의 반복을 현대의 언어로 다시 연주했다. 이 감정은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경을 넘고 시대를 건너 인류가 공유해 온 보편적 경험이다. 세계는 아리랑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감정을 다른 리듬으로 다시 만났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설명하지 않음’이 무책임이나 방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를 비워두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해석의 여백을 남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전통을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경험에 맞게 접속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태도다. 이는 전통을 소유물이 아니라 공용 언어로 대하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BTS가 보여준 전통의 조건은 분명해진다.

첫째, 전통은 주장하지 않을수록 강해진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전통은 경계선을 만든다. 반면 전통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면 그것은 배경이 되고 리듬이 된다. 둘째, 전통은 설명보다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세계는 전통 그 자체보다, 그 전통을 사용하는 주체를 먼저 본다. 신뢰할 만한 주체가 자기 언어로 말할 때, 전통은 부담이 아니라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셋째, 전통은 닫힐수록 보존되지만, 열릴수록 확장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전통을 보호하기 위해 고정해 왔다. 원형을 정하고 변주를 통제하며 관리의 대상으로 다뤘다. 그 결과 전통은 안전해졌지만 멀어졌다. 존중받았지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BTS의 ‘아리랑’은 이 흐름에 대한 분명한 반례다. 통제하지 않았기에 확산됐고, 정의하지 않았기에 반복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K-헤리티지 전략 전반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전통을 설명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관광 상품과 전시 해설, 홍보 콘텐츠 속에서 전통은 언제나 ‘이해해야 할 것’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해는 기억을 보장하지 않는다. 반면 감정적 접속은 반복을 만든다. 다시 듣고, 다시 보고, 다시 찾게 만든다. 전통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바로 이 반복성에 있다.


‘설명하지 않았기에 통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글로벌 문화 환경이 요구하는 전통의 조건에 정확히 부합한 결과다. 세계는 더 이상 친절한 해설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자기 언어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를 신뢰한다. 전통은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일관성의 결과일 때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BTS가 보여준 이 조건을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전통을 통제하려는 유혹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설명이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해석의 여백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리랑이 세계와 만난 장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전통, 그 조건을 제도와 정책, 산업과 교육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여부가 이제 한국 사회 전체에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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