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사이트] 북극 항로 시대, 잠수함 수주전이 묻는 한국의 좌표

  • - 강훈식 순방이 던진 북극 해양 질서의 질문

국가의 전략적 위상은 말로 정해지지 않는다.
산업의 체력, 기술의 깊이, 외교의 신뢰, 그리고 시대 질서의 변화를 읽는 통찰이 겹쳐질 때 비로소 한 나라의 위치는 달라진다. 최근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의 캐나다·노르웨이 순방을 계기로 부상한 잠수함 협력 논의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겉으로 보면 방산 수출 외교의 연장선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다르다. 이는 북극 항로라는 21세기 해양 질서의 재편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전략적 좌표를 차지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사건이다. 잠수함은 더 이상 특정 국가 해군의 전력 증강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해양 통제 능력, 항로 안정성, 동맹 구조의 신뢰, 그리고 산업·기술 수준을 동시에 드러내는 전략 자산으로 기능한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동부 스피츠베르겐 북극 해역에서 쇄빙 연구선 ‘크론프린스 호콘Kronprins Haakon’이 해빙 사이를 항해하고 있다사진AFP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동부 스피츠베르겐 북극 해역에서 쇄빙 연구선 ‘크론프린스 호콘(Kronprins Haakon)’이 해빙 사이를 항해하고 있다.[사진=AFP]

북극은 오랫동안 인류의 접근을 거부해 온 공간이었다. 그러나 해빙의 진전은 북극 해역을 점차 현실적인 항로로 바꾸고 있다. 베링해를 거쳐 북미와 유럽을 잇고, 그린란드와 북유럽을 지나 독일로 이어지는 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 중심의 해상 물류 체계를 보완하거나 일부 대체할 잠재력을 지닌다. 항로가 열리면 물류가 늘고 이해관계가 얽히며, 안보 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혹한의 환경과 긴 항해 거리, 제한적인 구조 능력 속에서 해상 감시와 억제 능력은 수면 위 함정보다 수면 아래 잠수함 전력에 의해 좌우된다. 북극 항로 시대에 잠수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기반 인프라에 가깝다.
 

세계 잠수함 시장은 조용하지만 치열하다. 미국·러시아·중국은 핵추진 잠수함을 중심으로 전략 억제 능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고, 유럽 국가들은 정밀한 디젤·전기식 잠수함과 통합 전투체계를 앞세워 기술 신뢰를 축적해왔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대한민국이 지역 안보 수요와 기술 역량을 결합해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잠수함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해양 권력과 산업 수준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대기업 중심의 조선·방산 산업 구조를 바탕으로 설계, 건조, 전투체계 통합, 군수 지원까지 일괄 제공할 수 있는 체계 역량을 확보했다. 이는 단일 장비 판매를 넘어 장기 운용 파트너십을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이다. 반면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은 중소기업 기반의 정밀 기계 산업 생태계를 통해 잠수함 엔진과 핵심 부품 분야에서 오랜 기술 축적을 이어왔다. 잠수함 추진 체계의 상당 부분이 독일 기업 기술에 의존한다는 평가는 이러한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약하면 한국은 종합 체계 통합에 강점이 있고, 독일은 핵심 부품과 정밀 기술에서 우위를 지닌다. 상호 보완적 구조다.

 

이런 배경 속에서 강훈식 비서실장의 캐나다 순방은 현장의 온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캐나다 총리실과 중앙정부는 한국의 종합 방산 역량, 가격 대비 성능, 납기 이력, 체계 통합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협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북극 전략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공급 체계와 장기적 운용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도 읽힌다.
 

다만 잠수함을 실제 운용하는 해군 조직 내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유럽, 특히 독일 잠수함에 대한 신뢰가 깊다. 오랜 운영 경험과 기술적 친숙성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여기에 캐나다 사회의 문화적 배경도 작용한다. 퀘벡주를 중심으로 프랑스어권 인구 비중이 높고, 유럽과의 정서적 연계가 강해 여론 전반에 유럽 선호 경향이 존재한다. 일부 프랑스계 방송과 유럽 성향 매체에서 독일 기술에 우호적인 보도가 이어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즉, 캐나다 내부에는 정부 차원의 전략적 판단과 군·여론 차원의 기술 선호가 교차하는 복합적 구도가 형성돼 있다.


노르웨이 순방 역시 북극 해역 안보의 현실을 보여줬다. 노르웨이는 북극권 해양 질서의 핵심 국가로, 잠수함 전력은 해양 감시와 억제의 상징이다. 한국 방산 체계에 대한 신뢰와 협력 의지가 확인된 것은 한국이 북극 안보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협력 파트너로 인정받을 가능성을 높인 성과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계약 협상이 아니라 해양 안보 네트워크 안에서 신뢰를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강훈식 비서실장이 노르웨이 정부의 한국산 다연장 로켓 천무 구매 계약 체결을 알리며 북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확고히 마련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이 1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를 만난 모습사진연합뉴스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강훈식 비서실장이 노르웨이 정부의 한국산 다연장 로켓 '천무' 구매 계약 체결을 알리며 "북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확고히 마련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이 1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를 만난 모습[사진=연합뉴스]

잠수함 수주전의 의미는 군사 계약을 넘어선다. 북극 항로는 물류뿐 아니라 자원 개발, 해저 통신망, 기후 변화 대응, 극지 과학 연구 등 복합적 이해가 얽힌 공간이다. 한국이 이 질서에 참여하려면 잠수함 건조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북극 항로 개척과 함께 극지 인프라 투자, 빙해 항행 기술, 극지 환경 보호, 해양 관측 시스템, 기후 데이터 분석 등 과학기술 역량을 병행해 축적해야 한다. 군사적 존재감과 과학기술 기여가 결합될 때 비로소 신뢰 가능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기본 원칙과 상식은 분명하다. 해양 질서는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 계약 이행, 환경 책임, 과학 협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동맹은 배제를 위한 구조가 아니라 공동의 안정을 위한 협력 체계여야 한다. 한국이 독일 등 기술 강국과 산업 협력을 모색하고, 캐나다와 북유럽 국가들과 과학기술·환경 협력을 병행한다면 잠수함 수주전은 경쟁을 넘어 공동 안보와 공동 번영을 설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잠수함은 바다 밑에서 움직이지만, 그 전략적 의미는 수면 위 질서를 향한다. 북극 항로 시대가 열리는 지금, 잠수함 전력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질서 유지의 기반으로 기능해야 한다. 기술과 신뢰, 과학기술 투자와 환경 책임이 결합될 때 대한민국은 잠수함 수주전을 넘어 미래 해양 질서 설계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길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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