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AI로 무장한 소방청, 공공부문 기업가정신의 시험대에 서다

  • -기술 도입이 아니라 '판단과 책임의 전환'이다

기후위기는 재난의 빈도만 늘린 것이 아니다. 재난의 성격 자체를 바꿔놓았다. 산불·폭우·폭염이 동시에 발생하고, 전기차 화재처럼 기존 매뉴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위험이 일상화됐다. 이런 환경에서 소방청이 내놓은 ‘AI·첨단기술 활용 10대 전략과제’는 단순한 기술 투자 계획이 아니다. 공공부문이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고,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명확하다. 인력과 경험에 의존해온 기존 대응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AI·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재난관리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선택이다. 초광역 통합 정보시스템, AI 기반 119 통합 출동, 드론과 로봇을 활용한 현장 지휘, 전기차 배터리 화재 조기 감지까지. 이는 ‘첨단화’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재난 대응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시도다.

해외 사례는 이 방향이 결코 실험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이미 AI 기반 피해 예측과 출동 우선순위 판단을 도입하며 ‘완벽한 예측’보다 ‘빠른 결정’을 중시한다. 불완전하더라도 즉각적인 판단이 지연된 정확성보다 더 많은 생명을 살린다는 인식이 공유돼 있다. 일본 역시 대형 재난을 겪은 뒤 기술보다 먼저 판단권의 구조를 손봤다. 데이터가 있어도 현장이 결단할 수 없다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교훈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소방청의 전략은 공공부문 기업가정신이라는 관점에서 읽힌다. 경영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정신을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를 그대로 적용하면, 이번 전략은 기술 정책이 아니라 조직의 판단 방식을 바꾸는 기업가적 선택이다.

AI 기반 119 통합 출동 체계는 출동 시간을 몇 분 줄이겠다는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어디에, 언제, 어떤 자원을 투입할 것인가”라는 판단의 일부를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맡기겠다는 조직적 결단이다. 문제는 정확도가 아니라 책임이다. 판단이 틀렸을 때, 이를 현장의 실수로 돌리지 않고 시스템의 책임으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이 공공부문 AI 도입의 진짜 시험대다.

전기차 화재 대응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해외 소방당국은 이미 전기차 화재를 ‘완전 진압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관리의 문제’로 본다. 열폭주를 완전히 막기보다, 얼마나 빨리 감지하고 확산을 차단하느냐가 관건이라는 판단이다. 소방청이 AI 기반 조기 감지와 전방향 냉각·질식 장비 개발에 나선 것은 경험이 쌓이길 기다리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미루는 비용이 더 크다고 본 기업가적 판단이다.

조직 이론가 헨리 민츠버그는 “복잡한 환경일수록 전략은 계획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로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재난 대응이야말로 이 말이 가장 정확히 들어맞는 영역이다.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통해 빠르게 학습하고, 그 결과를 다음 판단에 반영하는 구조다. AI는 그 학습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도구다.

‘K-소방’ 수출 전략 역시 기업가정신의 연장선에 있다. 공공 R&D 성과를 국내 행정 효율에만 묶어두지 않고, 국제 표준과 상품으로 확장하겠다는 발상은 공공조직에서는 흔치 않았다. 이는 단순한 수출 정책이 아니다. 재난 대응 역량을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재정의한 전략적 사고다. 드러커의 표현을 빌리면, 공공조직이 자신의 성과를 사회적 가치에만 머물게 두지 않고 경제적 가치로까지 확장하는 순간이다.

물론 위험은 존재한다. 기술은 빠르지만, 조직 문화와 책임 구조는 더디다. AI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실패를 회피하는 순간, 기업가정신은 구호로 전락한다. 그래서 관건은 기술이 아니라 리더십이다. 실패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책임을 조직이 함께 질 각오가 되어 있는가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AI 시대의 공공부문 기업가정신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영역에서조차, 변화와 실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다. 소방청의 이번 도전은 기술 정책이 아니다. 한국 공공조직이 어디까지 책임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이다. 그리고 그 시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