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시작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호남권 이전론이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그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산업은 하나의 밸류체인(가치사슬)에 묶여 집적 효과가 큰 데다 첨단 미세공정이 성패를 좌우하는 산업으로, 지역균형발전 등 정치 논리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2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전라북도 새만금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전북 완주진안무주)은 지난 16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력이 풍부한 새만금으로 이전할 것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전북도의회 균형발전특별위원회도 최근 성명을 내고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을 재검토해 새만금으로 분산 배치할 것을 촉구했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에 산업 생태계 구축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언급한 이후 탄력을 받고 있다.
이전론의 근거는 용인 지역에 막대한 전력과 공업용수를 조달하는 부담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만금을 RE100 국가산단으로 지정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정치 논리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결정돼 추진 중인 국가산단 조성 계획이 갑자기 변경된다면 반도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반도체는 설계(팹리스), 제조(파운드리·메모리), 장비·소재, 패키징, 고객사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산업이며 물리적 집적도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공정 개발과 양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소와 협력사, 장비업체가 인접해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다.
특히 첨단 미세공정으로 갈수록 집적 효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수 나노미터(㎚) 단위로 회로를 구현하는 첨단 공정은 온도·진동·습도·전력 품질 등 미세한 환경 변수에도 수율과 품질이 크게 좌우된다. 공정 조건이 조금만 흔들려도 불량률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어 이미 검증된 인프라와 공정 노하우가 축적된 지역에서 생산을 이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수도권에 조성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기업과 글로벌 장비·소재 업체, 연구개발(R&D) 인력과 협력 생태계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어 기술 고도화와 양산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클러스터를 인위적으로 분산하면 공급망이 느슨해지고 개발 기간과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 논리로 결정할 사안이 아닌 셈이다.
지방 이전이 가져올 현실적 부담도 간과하기 어렵다. 첨단 공정을 운영할 고급 인력 확보와 협력사 동반 이전, 장비 유지보수 체계 구축 과정에서 추가 비용과 시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비효율은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는 이전 요구가 정책 의제로 부상하지 않도록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에너지 식민지'나 '부동산 가치 때문에 용인을 고집하고 있다'는 주장에는 터무니없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운명과 직결되는 사안인 데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갑자기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산업은 집적 효과가 큰 분야여서 미국과 대만도 그러한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미 결정된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호남 이전론이) 당장 급한 것처럼 논의할 필요가 없고, 필요하면 새로운 계획을 통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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