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中 만리방화벽의 연설…닫힌 인터넷, 열린 문화

  • 中 정치·이데올로기·산업 요인…한류 콘텐츠 제한

  • 민리방화벽 차단에도 이어진 한류 소비


중국의 인터넷 환경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장벽을 갖고 있다. 흔히 ‘만리방화벽’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해외 플랫폼을 촘촘히 차단해 유튜브·넷플릭스·티빙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물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카카오톡 같은 소셜미디어(SNS)·메신저 서비스도 중국에서는 정식으로 이용하기 어렵다. 겉으로 보기엔 외부 문화의 흐름이 완전히 막힌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비공식 경로를 통해 한국 콘텐츠가 꾸준히 소비되어 왔다. 이러한 역설이 오늘날 중국 문화 시장을 이해하는 핵심 단서다.

한국 대중문화가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사랑이 뭐길래’, ‘대장금’ 같은 드라마는 중국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13~2014년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 정식 판권으로 수입된 마지막 한국 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한국 드라마는 판호와 심의의 벽을 넘지 못했고, 사드(THAAD) 사태 이전부터 이미 공식 유통 통로는 서서히 좁아지고 있었다.

중국이 사드 이전부터 한국 콘텐츠 유통을 제한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정치·이데올로기·산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첫째,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젊은 세대의 감수성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중국이 한국을 일종의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바라보는 인식과 맞물려 경계심을 불러왔다. 한국 콘텐츠는 개인의 선택, 연애의 자유, 자아 실현, 여성 주체성 같은 요소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는데, 이는 중국이 중시하는 집단성, 사회주의적 질서, 가족 중심의 가치와 충돌할 여지를 안고 있었다.

둘째, 해외 문화 소비가 체제 비교 의식을 자극해 젊은 세대의 사회·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는 중국 정책 담론에서 말하는 ‘문화 안보(文化安全)’와 ‘문화 자립(文化自立)’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외부 문화가 내면화될수록 체제 정당성에 대한 비교·평가가 활발해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정치적 변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셋째, 한국 콘텐츠의 압도적 인기 또한 부담이었다. 2010년대 중반 중국 주요 플랫폼의 조회수 상위권은 한국 드라마가 차지했고, 예능 포맷도 잇달아 리메이크됐다. 문화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시점에서 한국은 ‘강력한 외부 경쟁자’였다. 이는 중국이 추진하던 ‘통일대시장(統一大市場)’ 전략, 즉 거대한 내수 시장을 하나의 문화·산업 생태계로 통합하려는 정책과도 충돌했다. 

이 세 가지 흐름이 누적되면서 사드 사태를 기점으로 기존의 비공식적 규제가 제도화되고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허톈샹 홍콩 시티대학교 교수는 이 시기를 “공식적으로 금지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실상 금지된 상태, 일명 ‘빅밴(Big Ban)’”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소위 ‘한한령’으로 불리는 조치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여러 분야에서 단계적으로 시행된 비공식 규제의 성격에 가까웠다. 한국 드라마 판호 발급은 사실상 중단됐고, 예능 포맷 수입과 리메이크도 줄줄이 보류됐다. 한국 연예인의 방송 출연, 영화 캐스팅, 공연·팬미팅 개최 역시 심사가 지연되거나 허가가 나지 않는 방식으로 제한됐다. 이러한 조치가 누적되면서 한국 콘텐츠는 점차 중국의 공식 플랫폼에서 자취를 감다.

그러나 규제가 강화되었다고 해서 한국 콘텐츠 소비 자체가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접근이 막히자 젊은 세대는 VPN 우회망 사용, 비공식 다운로드, 팬더빙 커뮤니티 등으로 이동했다.

화이트 폴리 영국 컴브리아대 연구원은 이를 ‘그림자 유통(shadow circulation)’이라 부르며, 공식 플랫폼이 작동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비공식 경로가 사실상의 대체 유통 체계가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공식적 소비는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 흐름은 오프라인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한령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중국 대도시의 한국 아이돌 팝업 굿즈샵은 오픈과 동시에 긴 줄이 생겼고, 한류 스타의 사인회 티켓은 몇 분 만에 매진됐다. 공식 활동이 막혔음에도 팬덤은 약해지기는커녕 더 견고해진 것이다.

또한 중화권의 여러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접근이 차단될수록 청년층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공식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문화 흐름을 스스로 유지한다고 분석한다. 즉, 감시와 규제가 강화될수록 오히려 비공식적 접촉이 정교해지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다.

불법 다운로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도덕성 문제만이 아니라 제도적 차단이 만든 구조적 선택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공식적 소비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정식 판권 판매와 유통이 막히자 제작사와 투자사는 아시아 최대 시장 가운데 하나를 사실상 잃어버렸고, K드라마·K팝 산업의 수익 구조에도 큰 공백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공식적 접촉은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동안에도 민간 교류의 마지막 연결선으로 기능해 왔다. 공식 외교가 정체될 때에도 문화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문화는 본래 흐르려는 성질을 가진다. 막히면 고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 흐른다. 중국의 닫힌 인터넷 환경에서도 한국 콘텐츠가 꾸준히 소비된 이유는 바로 이 문화의 본성 때문이다.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음지에서 양지로 옮기는 일이다. 정식 유통 경로가 회복되면 산업 피해를 줄이고, 동시에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접촉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비공식적 접촉이 쌓아온 경험과 친밀감은 앞으로의 한·중 관계를 지탱할 중요한 문화적 기반이 될 것이다. 결국 문화는 차단을 넘어 흐르고, 그 흐름은 재연결의 시작점이 된다. 이제 그 흐름이 산업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형태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다.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중국 사회과학원 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박사 과정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털 CEO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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