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선원들이 불신하는 배의 미래

지난 2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다 사람들에게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침몰한 배'에 관한 얘기가 있다. 그 배가 거센 파도에 휘청이자 선원들은 배보다 먼저 구명보트를 살펴봤다는 얘기다. 배가 실제로 부서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원들이 자기 배를 더는 믿지 못하는 순간 그 배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침몰은 외부의 폭풍보다 내부의 불신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요즘 환율 1500원을 향해 치닫는 한국 경제를 보면 그 오래된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 역시 외부보다 내부에 있다. 환율을 끌어올리는 직접적 요인이 글로벌 달러 강세라 해도 유독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우리 내부 구성원들의 행동에서 찾는 것이 더 정확하다. 기업, 국민, 그리고 가계가 자신이 속한 경제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부터 살펴보자. 해외에서 벌어온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 이득이 큰 시기임에도 많은 기업들은 환전을 미루고 달러를 그대로 보유한다. 단순한 환율 전략이라기보다 원화 자산을 장기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에 가깝다. 자기 배가 흔들리면 선원이 조용히 구명보트를 준비하듯 기업들은 지금 달러라는 ‘구명보트’를 선택하고 있다.

국민의 선택도 비슷하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 부족은 오래된 문제다. 불투명한 경영, 반복되는 시세조종 논란, 제도적 취약성 등은 개인에게 불공정한 시장이라는 인상을 줄 만큼 반복돼 왔다. 반면 미국 시장은 규칙이 더 명확하고 성장 스토리가 뚜렷하다. 그래서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해외로 보낸 자금은 누적 100조원에 육박한다. 사람들은 자기 배보다 더 안전해 보이는 곳에 올라타기 마련이다.


가계 역시 경제의 불안정성을 체감하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돈을 ‘안전 자산’이라 여기는 서울 아파트에 몰아넣는다. 기업은 달러를 쥐고, 국민은 미국 주식을 사고, 가계는 부동산만 붙든다. 배가 흔들릴 때 선원들이 서로 다른 구명정을 찾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는 동안 환율은 1500원에 가까워졌다. 이상하지 않다. 경제 내부 구성원들이 이 체제를 신뢰하지 않는데 외부 시장이 원화를 높게 평가해줄 이유는 없다. 수출이 늘어도, 성장률이 회복돼도 내부 신뢰가 무너지면 환율은 그 불신을 숫자로 드러낸다.

다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정적 비관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거대한 배이고 아직 침몰한 것도 아니다. 이 배가 앞으로도 버티느냐 아니면 흔들림 속에서 선원들이 차례로 이탈하며 위험해지느냐는 지금 우리에게 달려 있다.

구성원들의 선택을 탓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국민에게 “국내 주식 사라”, 기업에 “달러 바꿔라”, 가계에 “아파트만 보지 말라”고 말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배가 안전해야 선원이 남는다. 정책 입안자들은 더 예측 가능한 정책, 더 투명한 자본시장, 더 신뢰받는 제도를 통해 다시 한번 “이 배는 탈 만하다”는 메시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환율 1500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지금 어떤 신뢰 위에 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이 경고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이 배는 끝까지 항해할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