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최근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으며 노환으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에 서울로 이주해 성장했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연극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이 경험은 이후 60여년에 걸친 그의 연기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195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텔레비전 방송국인 대한방송(KBS 전신) 드라마 ‘푸른지평선’에 출연하며 브라운관 시대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하며, TV 드라마 시스템이 정착되던 한국 방송 초기 흐름 속에서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정치권에서도 활동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 활동을 했으나, 이후 다시 연기 활동으로 복귀했다. 연기 복귀 후에는 사극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허준’(1999), ‘상도’, ‘장희빈’, ‘불멸의 이순신’, ‘이산’ 등에서 중량감 있는 조력자 혹은 권위 있는 인물로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시트콤을 통해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거침없이 하이킥’(2006), ‘지붕뚫고 하이킥’(2009)에서 코믹한 생활 연기로 폭넓은 세대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자리했다. 기존의 진중한 역할과 상반된 표현력은 배우로서의 변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예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3년 tvN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과 여행 속 모습이 소개되며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당시에도 그는 촬영 일정 속에서도 대본 연구와 체력 유지를 이어가며 ‘현역 배우’로서의 기량을 유지했다.
연극 무대는 그의 연기 경력에서 중요한 축이었다. 그는 꾸준히 무대에 섰으며, ‘앙리할아버지와 나’ ‘장수상회’ ‘리어왕’ 등에서 연극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특히 2021년 공연된 ‘리어왕’에서는 200분 이상 이어지는 대사량을 모두 소화하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교육자로서의 삶도 이어갔다. 그는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며 후배 배우 양성과 기반 확립에도 기여했다.
말년까지 그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024년 KBS 드라마 ‘개소리’ 출연으로 연기대상 최고령 수상자로 기록됐고, 2025년 한국PD대상에서도 배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건강 악화로 시상식 참석은 무산됐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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