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부산이 만든 전력반도체의 심장, 유니스(UNIS)

  • 유니스, 세계 4번째 SiC 웨이퍼 개발 기업으로 부상

유니스 최철헌 대표사진박연진 기자
유니스 최철헌 대표[사진=박연진 기자]

부산 사상공단의 오래된 공장을 지나면 낡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겉모습은 평범한 중견 화학기업이지만, 이곳에서 전기차와 방산·우주 산업을 움직이는 전력반도체의 핵심 소재가 만들어지고 있다.

33년 전 화학회사로 출발한 유니스가 세계 4번째로 8인치 SiC 웨이퍼 개발에 성공하며 global supply chain을 흔들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이다.

SiC 웨이퍼는 고열·고전압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류를 제어하는 전력반도체의 기초 소재로, 전기차 인버터 효율을 크게 높이는 핵심 부품이다.

기술 난도가 워낙 높아 미국 울프스피드와 중국 SICC 같은 대형 기업들만이 시장을 차지해왔다. 이 영역을 부산의 한 중견기업이 파고든 것은 산업계에서도 이례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유니스의 도전은 3년 전 포스코 산하 연구기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작됐다. 연구기관은 수백억 원의 국가과제를 들여 6인치 웨이퍼 개발에 나섰으나 5년간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기술 난제는 뚜렷했다. 웨이퍼는 단결정 성장 과정에서 열·압력·가스 흐름이 조금만 달라도 표면 결함이 발생해 전체 공정이 무너진다. 일종의 ‘다이아몬드를 키우는 기술’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유니스 역시 초반 1년 반 동안 실패만 반복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외부 장비에 의존하기보다 회사 내부에서 장비 설계부터 공정 제어 시스템까지 직접 개발했다.

결함률을 낮추기 위해 열 분배와 가스 흐름을 0.1 단위로 조정했고, 단결정 성장 장비도 자체 설계했다. 이 같은 방식은 중견기업으로서는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대기업도 쉽게 가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유니스는 3년 만에 8인치 웨이퍼 개발을 완성했다. 글로벌 기준으로 미국 울프스피드와 중국 SICC, TankBlue에 이어 네 번째다. 국내 기업 가운데서는 유일하다. 이어 12인치 웨이퍼를 시제품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사진= 박연진 기자]
유니스의 8인치, 12인치 웨이퍼 제품군 모습. [사진= 박연진 기자]

12인치는 아직 전 세계 누구도 상용화하지 못한 분야로, 이 시장을 선점하면 사실상 독점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12인치는 왜 중요한가. 단순히 크기만 커지는 문제가 아니다. 웨이퍼 지름이 커지면 같은 공정·같은 비용으로 생산되는 칩 수가 크게 늘어난다. 6인치 대비 8인치는 최대 50% 이상, 12인치는 몇 배까지 확대된다.

기술을 확보한 기업은 자연스럽게 가격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 인곳 절단이다. 중국 업체가 전시한 12인치 웨이퍼가 두께 600마이크로미터에 머문 이유다.

고객 요구는 350~400마이크로미터다. 유니스는 내년 1월부터 레이저 절단 기술을 적용해 400마이크로미터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상공단에 본사를 둔 것도 기술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 이곳은 특구로 지정된 기장·장안과 달리 각종 지원에서 완전히 배제된 지역이다. 공장 부지는 평당 1000만~2000만 원에 달하고 설비 확장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유니스가 사상공단을 지키는 이유는 기술 인력의 연속성 때문이다.

부산에는 반도체 전문 인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니스는 신입 직원들을 0에서 교육해 육성해왔다. 회사에선 “설비보다 인재가 먼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도 회사는 성장했다. 반도체 리드프레임 케미칼 국산화를 시작으로 삼성테크윈과 풍산마이크로텍, LG이노텍 등 국내 주요 업체에 소재를 공급하며 기반을 다졌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iC 웨이퍼 공급을 두고 협의 중이다. 이달 말 삼성 반도체팀이 생산라인을 직접 방문해 품질 검증을 할 예정이다. 성사된다면 부산에서 최초로 전력반도체 소재를 공급하는 1차 벤더가 탄생하게 된다.

SiC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중국과 미국 모두 전략물자로 분류해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전기차, 우주항공, 방산 장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만큼 지정학적 리스크와도 연결된다.

중국이 한국으로의 공급을 갑자기 제한할 경우, 국내 자동차 산업까지 멈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니스의 기술 확보는 이런 점에서 공급망 안정에 기여하는 산업적 의미가 크다.

회사가 300억원을 독자 투자해 확보한 이 기술은 앞으로 부산 산업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사상공단 한 가운데에서 세계 최고 난도의 반도체 소재가 생산된다는 사실 자체가 지역 경제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 부산의 전력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도 유니스가 실존하는 레퍼런스를 만들면서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유니스는 지금 월 1000장 수준인 8인치 웨이퍼 생산량을 연간 10만 장까지 늘릴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자본보다 기술로 승부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12인치 양산체제를 단계적으로 확보할 경우,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패권 구도를 만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상공단의 오래된 건물 안에서 시작된 기술이 세계 전력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바꿀지 주목된다.

유니스가 만들어낸 이 조용한 돌파는 부산 제조업의 구조를 새롭게 정의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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