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AI 주치의를 만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강검진에서 간 관련 지표가 나빠져 고민을 하던 지인이 문제를 해결했다며 연락이 왔다. 수차례 이름난 병원을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이유를 알 수 없어 고민이라던 것이 몇달 전이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이름난 병원의 명의가 아니었다. 인공지능(AI)이 건강 상담을 잘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AI와 상담을 하다 해결책을 찾았단다.

범인은 혈관건강에 좋다며 먹었던 건강보조제였다. 처방은 동네에서 명의로 소문난 의사가 했다. 답답한 마음에 AI에 현재 먹는 음식과 약, 건강보조제 등을 얘기해 주자 AI가 문제의 약을 찾았다. AI는 혈관에는 좋지만 간 수치를 나빠지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안 먹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보조제를 끊은 뒤 간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약을 처방했던 병원에 이런 얘기를 꺼내자 의사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AI를 건강상담에 이용해선 안된다는 것이 그 의사의 답이었다고 한다.

AI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여전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 AI의 편향된 답변, 환각작용 등을 우려해 의료 서비스 사용을 위해선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며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AI를 진료에 도입할 경우 무면허 AI 진단, 원격진료 등이 횡행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AI를 교육시키기 위한 의료 데이터 제공도 거부하고 있다. 

의료계 입장도 일리는 있다.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다. AI의 허위응답이나 편향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대형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모든 AI가 제대로 된 의학적 지식을 갖출 수는 없으니 검증되지 않은 무면허 진료가 현실에서 빈번해질 수 있다. 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AI는 의료분야에서 꾸준히 의미 있는 성과를 써 내려가고 있다. 피부병변 판독에서 피부과 전문의에 근접한 진단 능력을 보이고 흉부 X선 판독 분야서도 전문가 수준의 진단을 내놓고 있다. 암 진단을 전문으로 하는 AI의 진단은 의사를 넘어서기도 했다.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서너 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아주 친절한 의사라도 진료와 상담은 길어야 5~10분 정도다.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기에는 환자도 부담스럽고 의사는 바쁘다. 약국 역시 대안이 되기 어렵다. 처방 받은 약의 부작용이 궁금하다면 깨알 같은 설명서를 직접 읽어봐야 한다. 

많은 이들이 AI를 건강상담에 활용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가 의료 처방을 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는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필수 의료 공백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현재 AI가 공백의 일부를 메울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맹목적으로 AI를 의료계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미국 FDA와 유럽의 AI 규제는 의료용 AI가 높은 수준의 검증 과정을 거치고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AI의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무면허, 허위 광고 등의 문제는 현행 법으로 단속하면 될 일이다. 

의료계가 AI와 경쟁할 필요는 없다. AI가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휴먼 인더 루프' 구조를 법과 제도로 보장하면 된다.

혁신 자체를 막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AI가 편향된 답변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주된 이유는 질 낮은 학습 데이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AI가 더 양질의 데이터로 학습할 수 있도록 의료계가 먼저 양질의 학습용 의료데이터 제공을 허용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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