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아침 수영장에서 만난 어느 여성 교수님과의 짧은 대화가 머릿속에서 오래 맴돈다. 역사를 가르치는 분이었다. 조선시대 정조가 남긴 정치적 유산, 세도정치의 비극, 그리고 오늘의 시국까지. 물 위로 햇빛이 잔잔히 부서지던 시간에, 우리는 한동안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최근 국감에서 오간 한 전직 정치인의 편지 논란 얘기를 꺼냈을 때였다. 상대 교수님은 그 편지를 '연애편지'로 단정했다. 나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편지를 둘러싼 해석이야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 타령으로 축소되고, 더 나아가 희화화되는 순간, 공적 영역은 사적 감정에 잠식된다. 정치가 품격을 잃는 순간은 언제인가. 사안의 본질이 사라지고, 사실 대신 프레임이 자리 잡을 때다. '무엇이 진실인가'보다 '어떻게 남을 깎아내릴까'가 먼저일 때다.
정치인은 공격받을 수 있다. 그 직업이 본래 그렇다. 그러나 선을 넘는 순간, 정치는 설득의 영역을 떠나 조롱의 무대가 된다. 최근 국감장에서 벌어진 장면을 보며 많은 국민이 느꼈던 피로감도 거기에 있다. 국정의 방향을 따져 묻는 대신, 확인되지 않은 인신비방과 희화화로 시간을 채우는 모습. 그 광경이야말로 오늘의 정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한 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지금부터 15년여 전, 한 여성 연예인이 '변호사 출신의 지방자치단체장과의 스캔들'을 폭로해 논란이 일었을 때다. 그때 나는 한 변호사 출신의 광역단체장에게 직접 물은 적이 있다. "혹시 그런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는 즉각 반문했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기초단체장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대답 속에는 억울함과 자부심,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명예가 섞여 있었다.
물론 그때 나는 가십성 글을 그대로 믿은 순진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했다. 풍문은 쉽고, 확인은 어렵다. 말은 빠르고, 진실은 더디다. 문제는 지금 정치가 그 느린 진실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가 스스로 품격을 내려놓을 때, 여론은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의 파도 위에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교수님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분은 나보다 여섯 살 위의 누나 같은 분이고, 오늘도 수영장에서 내게 안티포그를 건네준 따뜻한 분이다.
다만 안타까운 건, 역사를 가르치는 분조차 정치 프레임의 안개 속에 갇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지금 이 나라의 정치 현실이다.
아침 수영장에서 물결을 가르며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 한토막이 떠오른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정치는 흥분이 아니라 성찰이어야 한다. 조롱이 아니라 논쟁이어야 한다. 풍문이 아니라 사실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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