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코스피 4000이 의미하는 것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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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본은 오랫동안 부동산, 그중에서도 서울 아파트에 갇혀 있었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확실한 수익처’로 기능했다. 보유세는 낮았고, 은행은 돈을 쉽게 빌려줬으며, 전세 제도는 손쉽게 갭투자를 가능하게 했다. 적은 자본으로 남의 돈을 끌어다 집을 사고, 전세금을 끼워 또 한 채를 사는 구조가 합법적으로 가능했다. 이른바 ‘레버리지의 천국’이었다. 정부의 정책은 경기 부양을 이유로 대출을 풀었다가 묶는 식의 단기 대응에 머물렀고, 그 틈에서 부동산은 거의 무위험 자산처럼 인식됐다. '강남만 사면 무조건 오른다'는 믿음은 개인의 투자 판단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신념이 되었다.

반면 국내 주식시장은 불투명했다. 대주주와 투기세력이 개인투자자를 속이는 일이 반복됐고, 공시는 늦고, 경영권 분쟁은 잦았다. 소액주주는 늘 ‘정보의 벽’ 뒤에 있었고, 주가조작과 내부거래는 일상처럼 이어졌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냉소가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이 신뢰받는 금융시장보다 부동산에 몰리면서 돈의 순환은 멈췄다. 생산적 투자로 가야 할 자금이 콘크리트에 갇히고, 한국 경제는 ‘집값의 나라’로 변해버렸다.

문제는 이 흐름이 국민경제를 짓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 신축 30평대 아파트가 60억원을 넘나드는 현실에서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중산층은 빚의 노예가 되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만들어낸 ‘부의 착시’는 실질적 풍요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집값이 올라 행복한 사람은 투기꾼뿐이다. 실거주자는 집값이 올라봐야 세금만 더 내야 하고, 미래 세대는 더 비싼 문턱 앞에서 좌절한다.

정부가 자본의 흐름을 바꾸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출 규제, 다주택자 과세 강화, 부동산 세제 정상화는 모두 돈의 방향을 ‘땅’에서 ‘시장’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저항은 거세다.

'왜 돈을 빌려주지 않느냐' '정부가 사다리를 걷어찼다'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는 것은 시장 침해다'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결코 방임이 아니다. 부동산이 국민경제를 왜곡하고 있다면 그 흐름을 바로잡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앞으로 보유세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반발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여당도 선거를 앞두고 그 카드를 꺼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분명하다.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쏠린 자본을 점차 생산적 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필요하다. 단기간의 조정과 불편은 불가피하지만 그 고통이 미래의 투자 기반을 만든다. 기업의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지는 ‘금융의 선순환’이 정착된다면 한국 경제는 비로소 한층 건강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코스피 4000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지수의 상승이 아니다. 자본이 생산적 영역으로 이동하고, 국민이 부동산이 아닌 산업과 기술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 가능성을 의미한다. 돈이 주택 담보가 아닌 창의와 혁신의 동력으로 흐를 때 국가의 성장은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이제 자본은 집이 아니라 기업으로, 아파트가 아니라 아이디어로 흘러야 한다. 그 길이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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