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잠잠한가 싶던 미·중 관계가 다시 충돌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내놓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중(對中) 추가 관세와 핵심 소프트웨어 수출통제 카드로 맞대응에 나섰다. 또한 14일(현지시간)부터는 양국 모두 상대국 선박에 대해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미·중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열릴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협상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자신 소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오는 11월 1일부로 중국산 제품에 대해 현재 부과 중인 관세에 추가로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현재 55%인 미국의 대중 평균 관세가 155%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소프트웨어의 대(對)중국 수출도 통제하겠다고 밝혔고 비행기와 비행기부품 등에 대한 수출 통제도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는 지난 9일 중국이 내놓은 희토류와 관련 기술 수출 통제에 대한 맞대응 조치로, 중국 상무부는 군수·민수 양용(兩用) 희토류 수출 기업들로 하여금 '이중용도물자 수출허가증'을 취득하도록 했다. 또한 군사용·대량살상무기(WMD) 개발·테러 등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우려가 있는 수출은 원칙적으로 금지했고 14나노 이하 로직칩, 256단 이상 메모리칩, 인공지능(AI) 군사 연구개발 등에 사용되는 희토류에 대한 수출은 사안별로 심사한 후 허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에 양국 간 무역 공방이 격화하면서 지난 5월부터 이어져 오던 미·중 간 무역전쟁 휴전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무역전쟁 재점화 우려 속에 지난 10일 미국 증시는 급락세를 연출한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상호관세 발표 다음 날인 4월 10일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인 2.7% 하락을 기록했다.
영화 '빅쇼트' 주인공 중 한 명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월가 펀드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먼은 데일리메일과 인터뷰하면서 "중국과 무역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경기 침체는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하지만 중국과 무역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어떤 예측도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중 양국은 상대방 선박에 대해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전방위적인 충돌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교통운수부는 10일 미국 선박에 대해 14일부터 '특별 항만 서비스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4일부터 중국 항만에 기항하는 해당 선박은 순t(Net ton)당 400위안(약 8만원), 2026년 4월 17일부터 기항하는 선박은 t당 640위안을 납부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14일부터 중국 선박에 t당 50달러(약 7만1000원)의 입항료를 부과할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한 맞대응 조치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APEC 계기 미·중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아직 취소하진 않았다. 열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차피 거기 있을 것이다. 아마 하게 될 것 같다"며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아울러 그는 '중국이 수출 통제를 철회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한다. 그래서 11월 1일로 잡은 것"이라고 답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관세 발효 시점이 당장이 아니라 APEC 정상회의 이후로 예정된 점을 짚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여지를 남겨둔 셈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상무부 역시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게시한 입장문에서 "중국은 미국이 조속히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고 양국 정상이 통화에서 한 합의를 가이드로 삼아 어렵게 온 협상 성과를 지키며, 중·미 경제·무역 협상 메커니즘의 역할을 계속 발휘하기를 촉구한다"며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따라서 최근 연이은 미·중 간 샅바 싸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APEC 정상회의를 전후로 한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해법이 도출될 것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왕원 중국 인민대 교수는 FT에 "중국은 이미 미국의 '종이호랑이'식 행동에 익숙하다"며 "이번 긴장은 결국 협상을 통해 해소될 것이며 중국의 대응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하는 전략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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