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판결②] 헤어진 뒤 돈 돌려받을 수 있을까…법원은 "증거 없으면 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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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 아낌없이 베풀었던 돈을 헤어진 뒤 돌려받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빌려준 돈은 당연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차용증이나 변제 약속 같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연인 간 주고받은 금전은 ‘증여(선물)’로 추정된다는 게 최근 판례다.

2023년 8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수천만 원대 이체 내역을 놓고 다툰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교제 기간 동안 원고 남성은 매달 수백만 원을 전 연인 여성에게 송금했으나, 이별 후 “대여금이니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차용증이 없고, 송금 내역에도 ‘대여금’ 표시가 없으며, 문자·메신저 대화에서도 변제 약속을 찾을 수 없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문에는 “연인·친분 관계에서의 반복 송금은 생활비 지원이나 호의로 볼 수 있어, 단순 이체 사실만으로 대여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가 담겼다.

비슷한 판결은 2024년 10월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에서도 나왔다. 동거와 결별을 거친 전 연인 사이에서 금전·물품 반환 소송이 제기됐지만, 법원은 “소액 반복 송금은 생활비 성격이 강하고, 대여 의사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전부 기각했다. 원고는 교제 기간 동안 10만~50만 원 단위로 꾸준히 돈을 보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액수와 사용처, 관계의 맥락을 보면 차용이라기보다 생활비 분담이나 호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례는 상식과 크게 다르다. 연애가 끝난 뒤 “그동안 쓴 돈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당연히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대부분 기각된다. 법원행정처 집계에 따르면 연인 간 금전 분쟁 소송은 최근 10년간 급증했다. 2010년대 초반 연간 20여 건 수준이던 관련 소송은 2020년 이후 수백 건대로 불어났다.

결국, 연인 관계라 해도 돈을 빌려줄 때는 반드시 차용증을 쓰거나, 계좌 송금 시 ‘대여금’ 등 메모를 남기고, 문자·메신저 대화에서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법원은 “호의로 준 돈”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교제 기간이 길고 경제적 상황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 증여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예외도 있다. 액수가 수천만 원에 이르러 연인의 경제력에 비해 과도하게 크거나, 특정 시점에 빌려주고 변제 계획을 명확히 합의한 사실이 입증되면 법원이 대여금 청구를 인용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된다.

이 문제는 감정과 법의 간극을 보여준다. 사랑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출했지만, 감정이 식고 관계가 끝난 뒤에는 돌려받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 없는 대여는 호의일 뿐”이라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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