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호찌민시가 빈즈엉성과 바리아붕따우성과의 합병을 계기로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해양 물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호찌민시는 해안도시로 탈바꿈하기에 충분한 지리적 이점을 갖췄지만 글로벌 해양 허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16일(현지시각) 베트남 매체 청년신문에 따르면 호찌민시는 합병 이후 면적이 약 9820km²로 늘었고 롱하이에서 꼰다오까지 110km 넘는 해안선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행정 구역 확장을 넘어 베트남 경제 구조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 현재 호찌민시는 동남아를 넘어선 국제 메가시티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항만과 물류 서비스를 강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호찌민시의 최대 자산은 까이멥-티바이 항만 클러스터다. 이 항은 15만톤 이상의 초대형 선박을 수용할 수 있고 태평양 횡단 항로와 직접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매달 100척이 넘는 초대형 선박이 입항해 막대한 화물과 함께 다양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베트남 선박대리점·중개·서비스협회의 팜 꾸억 롱 회장은 “호찌민 항만 클러스터는 싱가포르와 홍콩 그리고 태국보다 지리적으로 유리하다”며 “동남부 지역 물동량 26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가운데 60% 이상을 호찌민시가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합병 이후 호찌민시 전체 통관 물동량이 연간 1400만TEU에 이르렀으며 2030년에는 2657만TEU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국 화물 유치 가능성도 크다. 캄보디아의 시아누크빌 항만은 5만톤 미만 선박만 입항 가능해 연간 약 200만TEU 규모 화물이 싱가포르나 태국으로 환적되고 있다. 까이멥-티바이항은 거리와 비용 면에서 경쟁력이 있어 이 물량을 흡수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다만 현재 베트남 항만은 단순 하역 기능에 머물러 있다. 선박이 필요로 하는 연료 공급, 선박 수리, 선원 교대, 의료 서비스 같은 부가가치 인프라는 아직 부족하다. 특히 국제해사기구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육상 전력 공급 등 친환경 인프라 부재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팜 회장은 “싱가포르 PSA 항만만 해도 국가 GDP의 7%를 직접 창출하는데 이는 베트남 항만에 아직 없는 ‘비옥한 땅’”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까이멥-티바이항에서 발생하는 700만TEU 규모의 화물 중 70%가 수로를 통해 호찌민으로 운송되고 있으나 구시가지의 낡은 ICD 항만을 중심으로 화물이 몰리면서 만성적인 도로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이공강과 동나이강 상류에 배후 물류단지를 조성하면 교통 분산과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롱탄국제공항이 완공되면 육해공을 연결하는 세계적 물류 허브로 도약할 기반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항만 개발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제도적 문제다. 팜 회장은 단일화된 부두 계획과 자유무역지대 내 물류 부지 조성, 창고와 연료 공급 시설, 수리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특히 관세와 세제 개혁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복잡한 절차, 높은 세금, 선원 출입 제한은 글로벌 선사를 끌어들이는 데 큰 장애물이다.
반면 싱가포르는 관세와 부가세를 면제하는 자유무역지대를 운영하고 홍콩은 무관세 자유항으로 세계 최단 처리 속도를 자랑한다. 부산항 역시 환적 화물 인센티브와 24시간 통관으로 동북아 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전문가들은 호찌민시가 하드웨어적 조건은 갖췄지만 운영 효율성과 제도 혁신 같은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디지털 전환은 시급한 과제다. 싱가포르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항만 시스템, 블록체인 기반 전자 선하증권, 자동화 터미널, 실시간 화물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팜 회장은 “호찌민시는 세계가 요구하는 상업적 기능을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해양 허브가 될 수 없다”며 “부지 확보, 인프라 확충, 제도 혁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고, 정책 역시 뒷받침된다면 세계적인 항만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호찌민시가 2030년까지 동남아 대표 해양 물류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선 명확한 로드맵과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물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물류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 역시 ‘2030 국가 항만 개발 마스터플랜’을 통해 호찌민시를 국제 환적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계획 실현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결국 호찌민시의 성패는 향후 몇 년간 제도 혁신과 서비스 고도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뤄내느냐에 달려 있다. 지리적 이점은 출발점일 뿐이고 진정한 경쟁력은 효율적인 시스템과 합리적인 비용 구조, 그리고 우수한 서비스 품질에서 비롯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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