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짧은 일정이지만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가운데 열리는 만큼 의미 또한 각별하다. 회담에서는 셔틀 외교 복원을 비롯해 한·일 간 다양한 협력 사안들이 논의될 전망이다. 양국 사이에서 급증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 현안도 그중 하나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에 있어서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양국은 경제 구조가 비슷하면서도 저출생·고령화 등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라는 말 그대로다.
한·일 양국은 1965년 국교 수교 후 60년간 관계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민간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협력을 이어왔다. 이 가운데 지난 2024년의 한·일 간 지자체 교류 건수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과거 10년을 통틀어 가장 많은 교류 건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일본 ‘지자체국제화협회’에 따르면 2024년 한·일 지자체 간 교류 건수는 도·도·부·현(都道府県)과 그 아래 시·정·촌(市町村) 단위까지 모두 합쳐 약 350건에 달한다. 문재인 정권 하인 2020년에는 역사 문제 갈등으로 인한 관계 악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58건으로 급감했지만 2022년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늘어났다. 2025년 6월에는 다시 진보 진영의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외교 등에서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주의’를 내걸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 교류 건수를 일본 도·도·부·현별로 살펴보면 돗토리현이 26건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가나가와현 23건, 홋카이도 22건 순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1위에 오른 돗토리현의 경우 강원도와 30년 이상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협력 사례들을 창출하고 있다.
2024년에는 우호 협력 관계 30주년을 맞아 히라이 신지 현지사가 김진태 도지사를 찾아 ‘청년활약 미래창조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양측은 인구 감소 문제를 극복하고 청년들이 활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돗토리현과 강원도는 지리적으로도 가까우면서 면적의 대부분이 산간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히라이 지사는 김 지사에게 “한·일은 젊은층의 도시 유출 문제 등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우리에게도 참고가 된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돗토리현의 장애인 복지 정책을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돗토리현은 지난 30년 동안 27명의 직원을 강원도에 파견했고, 강원도는 돗토리현 직원 39명을 맞아 협력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일례로 돗토리현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도청 웹사이트를 통해 접수해 담당 부서와 공유하는 ‘도민의 소리’를 벤치마킹했으며, 애플리케이션 등 IT 활용 사례들도 강원도로부터 전수받았다. 가을에는 양측 대학생들이 모여 지역 과제 해결을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지역 과제 해결’을 교류 목적으로 전면에 내건 도쿠시마현과 제주도의 협력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양측 모두 인구 70명 미만에 총생산액은 200억 달러(27조8000억원) 전후로, 풍부한 자연환경과 온화한 기후를 기반으로 한 농업 중심 지역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올해 1월에는 양해 각서를 체결해 재생 에너지, 환경, 관광, 농림·수산 등 다방면에서 서로의 정책들을 참고하기로 했다. 도쿠시마현 측은 제주도의 환경 대책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데, 제주도가 폐기물 재활용률에서 앞서 있는 데다 전기 자동차 보급 대수도 많아 관심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도 일본을 통해 배울만 한 점이 많다. 한국은 2023년부터 일본의 제도를 한국식으로 변형해 도입한 ‘고향사랑기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기부액이 일본 만큼 증가하진 않고 있다. 한국 지자체들은 성공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일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경상북도는 이달 중 히로시마현과 자매 결연 체결을 추진 중으로, 이를 위해 최근 요코타 미카 히로시마현 부지사를 비롯한 15명의 방문단이 경북도를 찾아 논의를 가졌다. 충북 옥천군은 내년부터 자매도시인 아오모리현 고노헤마치와 청소년 교류 활동을 재개키로 했고, 경남 밀양시는 지난 6월 세토우치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체결했다.
아시아에서는 1960년대 일본이, 1970년대 한국이 경제적으로 도약했고 이후 협력과 경쟁을 거쳐 현재는 한·일이 동등한 반열에 올라 있다. 닛케이는 “과거에는 주로 한국이 일본을 모델로 삼아왔지만 상황은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행정 분야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서울대 한국행정연구소의 다카키 게이스케 연구원은 “급속한 저출생 대응이나 디지털 행정 등 한국의 사례를 일본이 참고하기 시작했다”면서 “한·일이 서로 배우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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