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저사양 인공지능(AI) 반도체 'H20' 중국 수출을 재허용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받쳐주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기존 HBM3 대신 HBM3E 8단 제품을 탑재할 경우 SK하이닉스의 수혜가 기대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중국 주요 고객사에 H20 칩 공급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통보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의 수출 허용 조치로 중국에 대규모 물량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상반된 메시지다.
H20에 대한 수요는 높은 편이다. 중국의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해당 칩을 원하는 데다 지금까지 중국 반입이 되지 않았던 품목이어서 추가 수요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작 제품을 판매해야할 엔비디아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 엔비디아는 H20 수출 규제 당시 대만 TSMC에 위탁했던 양산을 취소했으며, TSMC도 해당 양산 라인을 다른 고객사에 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젠슨 황 CEO가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칩을 주문 발주하려면 완제품 출시까지 최소 9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제품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수출 라이선스 승인이 필요한데, 미국 정치권에선 이를 반대하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존 물레나르 공화당 의원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H20 수출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H20 수출 재개에도 수요를 공급이 못따라가는 일종의 병목현상이 발생하면서 거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H20 수출 재개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또한 사안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엔비디아는 올해 초 H20에 기존 HBM3 대신 HBM3E 8단 칩을 탑재해 성능을 높인 바 있다. 만약 중국향 H20에도 HBM3E 8단 제품이 들어간다면 SK하이닉스는 직접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 외에도 마이크론이 공급사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SK하이닉스와의 관계가 우선시될 것이 유력하다. SK하이닉스는 올 하반기 HBM3E 생산 비중에서 12단 제품을 80%, 8단 제품을 20%로 생산한다는 계획인데,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춰 비중을 수정할 수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20 중국 수출이 실행되기 까지에는 여러 변수가 남아있어 당장 반도체 공급사에게 호재거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젠슨 황 CEO가 중국 진출 의지가 높고, 그에 맞춰 H20도 점차 고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공급한다면 HBM3E 8단의 안정적인 수율을 인정받은 SK하이닉스 제품을 우선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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