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가 시장에 등장하면 지금과는 다른 경쟁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5세대 HBM까지는 SK하이닉스가 시장을 독점해왔지만 6세대가 출시되면 경쟁이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띌 것으로 보인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경주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에서 "HBM4부터는 고객에 따라 커스텀화하는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시장이 하나가 아니라 분화돼 쪼개지고, 미·중 갈등으로 양국 시장이 완전히 분화돼버린 것도 큰 이슈"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차세대 메모리 연구개발 현황에 대해 "HBM처럼 10년 전에도 있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런 제품이 지금도 수두룩하다"며 "새로운 것이 속속 탄생한다. 어느 게 뽑힐지 알 수 없으니 시나리오와 상황에 맞게 연구개발을 착실히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최근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하면서 내년 HBM의 경쟁 심화와 가격 하락을 예상한 것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최 회장 말대로 HBM4 경쟁은 이전과는 다르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엔비디아에 HBM3E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독주 체제가 종료되고 2026년에는 본격적인 경쟁 체제가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HBM4 12단 시제품(샘플)을 공급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선두에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미국 마이크론도 3개월 뒤인 지난 6월 엔비디아에 같은 성능의 샘플을 공급해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이달 내로 HBM4 12단 샘플을 엔비디아와 AMD 등 고객사에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조금 늦더라도 유일하게 10나노급 6세대(1c) D램 공정을 적용해 보다 정밀하고 수율이 안정적인 HBM4를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올해 하반기 중 HBM4를 본격 양산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HBM 플레이어가 늘면서 엔비디아는 내년 출시될 신형 AI가속기(GPU) '루빈'에 들어갈 HBM4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내년에 MI400를 출시하는 AMD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골드만삭스는 "경쟁 심화로 내년 HBM 가격이 10% 떨어질 것"이라며 "HBM 가격 결정권이 제조사에서 엔비디아 등 고객사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 HBM 물량의 80~90%를 싹쓸이하고 있는 SK하이닉스의 '독주체제'가 끝날 것이라는 얘기다. 골드만삭스는 심지어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납품 통과(퀄테스트)가 지연되더라도 HBM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점쳤다. 엔비디아가 품질 검증을 통과한 마이크론을 지렛대 삼아 SK하이닉스에 가격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가격뿐 아니라 고객사의 요구 조건도 세분화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앞으로 다양한 AI가속기가 출시되면 사양에 적합한 성능과 가격을 맞춘 HBM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HBM4 공급처가 늘어나면 가격은 하락하게 되고, 고객사 요구사항도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중국 공급망 질서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누가 우위에 설 것이라고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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