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논설고문]](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13/20250213113057569156.png)
[이재호 논설고문]
통일부장관 내정자인 정동영(72) 장관은 통일부장관만 이번이 두 번째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7월 처음 통일부장관에 발탁됐고, 이번에 다시 낙점을 받았다. 20년 만의 인사다. 두 사람 모두 충실한 햇볕론자여서 더 관심을 모았다.
이 대통령과 정 장관은 평소에도 각별한 사이다. 정 장관이 2007년 6월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대선에 도전했을 때 이 대통령은 성남지역 시민운동가 겸 변호사로 그를 적극 도왔다. 정 장관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했고, 제 15, 16, 18, 20, 22대 국회의원을 지낸 5선 의원이다. 이 대통령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후 중앙대학 법학과를 나왔다.
이 두 사람의 조합에 추가할 사람이 하나 있다. 이 정권의 외교부장관 내정자인 조현(68) 전 유엔대사다. 필자도 젊어서부터 잘 아는 조 대사는 외무고시 13회로 유엔대사와 외교부 1, 2차관을 지낸 정통 외교관이다. 전북 김제 출신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나왔다. 다자외교에 능하고, 소신이 뚜렷해 외교부 안팎에선 신망이 두텁다.
이날, 정동영 장관 내정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북한을 우리의 주적(主敵)으로 보느냐”는 김기현 의원(국민의힘)의 질의에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주적’이라기보다 ‘위협’이라고 했다. “북이 핵무장을 하고 미사일 위협을 가하는데도 위협일 뿐이냐”는 질문에도 “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정부가 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발간된 2022년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돼있다. 정 후보자는 남북 간 9·19 군사 합의 대해서도 “새 정부의 국무회의에서 9·19 합의를 복원한다는 우리의 일방적인 조치로 복원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이른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사이에 간격이 크다고 느꼈다. 그들 말대로라면 우리는 좌우, 보혁 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과연 현실에서도 그러한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보다 앞서서도 정 내정자는 ‘통일’을 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말자는 주장까지 했다. 이들은 ‘통일’ 부‘라는 표현 대신 독일처럼 우리도 ’전독부‘(全獨部)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고 했다. 흡수통일을 경계하던 시대는 지났으므로 혐오와 살의로 번뜩이던 시대도 덮고 가자는 것인데 북측도 내심 그걸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들의 눈에는 흡수통일과 ‘평양의 서울화’의 위험만 보이고 다른 위험은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면 이 문제는 작년 말(2023년 ~2024년 초) 북이 들고 나온 ‘적대적 두 국가론'의 연장이다.
당시 북은 갑자기 “이전의 통일노선을 모두 철폐하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거부한다”고 밝히면서,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상호 적대적 실존 두 국가만이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게끔 아예 호칭도 남조선이 아닌 한국 또는 대한민국으로 바꾸었다.(나무위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원인과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나는 그중 가장 적실성을 갖는 게 “이대로 가면 북은 결국 남한에 흡수된다”는 위기감 때문이라고 본다. 실제로 북은 최근 들어 ‘남북한’처럼 같은 뿌리’라는 동질성을 연상케 하는 단어들, 예컨대 ‘삼천리 강산' '8천만 겨레' 같은 단어 등을 모두 쓰지 못하게 금지시켰다. 북 주민들을 통제하는 구실로 삼으려는 속셈임이 분명하다.
초보적인 핵억지론에도 나오지만 핵을 보유한다는 것과, 핵을 실제로 쏠 의사가 있다고 상대방이 믿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북은 한반도를 2개의 적대국으로 나눔으로써 남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제든 핵을 쓸 수 있는 준비와 논리, 그리고 협박을 병행 발전시키고 있다.
외교적 결정처럼 다층적, 다면적인 국가 현안은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폭을 이성적으로 넓혀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북의 함정에 빠지거나 자해(自害)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그런 어리석은 일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난다면, 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국내외의 외교환경은 아주 안 좋다. 한·미관계엔 불확실성의 안개가 더 짙어졌고, 남북은 냉전 때보다 더한 냉기류 속에서 상호 적대감만 드러내고 있다. 중국(시진핑)은 한국이 과거 자신들의 속국이었음을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을 동원하기에 바쁘다. 세기말, 한때 가졌던 탈냉전의 꿈은 이미 사라졌다.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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