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③] "모두가 저죠" 박정민, 그의 이름이 되는 일들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 대표 박정민 사진 샘컴퍼니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 대표 박정민 [사진= 샘컴퍼니]


배우 박정민에게는 늘 ‘또 다른 이름’이 붙는다. 배우, 작가, 책방 주인, 출판사 대표. 하지만 그는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도 규정짓지 않는다. “모두가 저죠. 배우도 출판인도 모두가 저예요.”
그에게 배우라는 길도, 출판사 대표라는 자리도 거창한 목표로 시작된 일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영화감독을 꿈꾸며 영화를 가까이 두었고, 대학로 극단의 스태프로 지내던 시절, 선배와 동기들의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자연스럽게 배우가 됐다. “배우가 된 계기는 너무 많아서 하나를 꼽을 수 없어요. 그냥, 여러 경험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배우라는 꿈을 품게 된 것 같아요.”

출판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방의 끝이 보이던 시점, ‘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그를 출판으로 이끌었다. “이렇다 할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목표나 책임감을 갖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재미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덧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이 책임감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해서, 현재로서는 아주 즐거운 상태예요.”

배우라는 본업과 출판사 대표라는 또 다른 역할. 두 일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자 그는 잠시 고민한 듯하다가 말했다. “출판사의 경험이 배우라는 본업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 경험이 너무 미천해서… 글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서 조금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 정도랄까요. 반대로 배우의 경험이 출판사 운영에 영향을 주는 건, 얼굴이 알려진 직업이다 보니 처음 보는 분들도 저를 크게 의심하지 않고 친절히 대해주신다는 점이에요. 신원이 확실하니까요.”
 
출판사 무제 대표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박정민 사진 김호이 기자
출판사 무제 대표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박정민 [사진= 김호이 기자]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경험에서 나오는 산문”이라고 했다. “글을 쓸 때는 저의 이야기를 하는 거고, 연기를 할 때는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해야 하죠. 글과 연기의 출발선은 아주 반대편에 있어요. 물론 결과물로 달려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배우가 만든 출판사’, ‘배우가 운영하는 책방’이라는 프레임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는 이 시선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더 겸손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책 하나 하나에 진심을 담지 않으면 욕먹기 십상이라, 최대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려고 해요. 배우가 운영하기 때문에 주목받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 관심을 ‘이용’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아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무제 부스에 모인 관람객들 사진 김호이 기자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무제 부스에 모인 관람객들 [사진= 김호이 기자]


박정민에게 ‘글을 잘 쓴다’, ‘연기를 잘한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기준은 따로 없어요.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글과 영화를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런 작품들이 좋은 글이고 좋은 영화겠죠. 작품에는 창작자 고유의 색깔이 들어가기 마련이잖아요. 감상하는 제가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는 건 퇴보하기 딱 좋은 태도일 거예요. 최대한 작품을 즐기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 일과 영화 한 편을 세상에 내놓는 일, 감정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는 “작품에 들어가는 자본의 차이가 큰 것 말고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 모든 작품에 저의 흔적과 애정이 담겨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참여한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요즘 독립출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그는 “모든 독립출판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명의 작가가 본인의 안에 있는 걸 글로 쏟아내고, 그것을 책의 형태로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들이는 시간과 공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기성 출판 시장과 독립 출판 시장의 유기적인 연대를 통해 좋은 작가들과 이야기를 많이 발굴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실제로 그런 작업이 꽤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고무적이기도 하고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 무제 부스를 운영한 박정민사진 김호이 기자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 무제 부스를 운영한 박정민[사진= 김호이 기자]


그의 이야기는 어디서 풀리는 걸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친구들과 풀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기장이나 친구, 연인과의 대화로 푸는 것처럼요. 꼭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생기면 다시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풀지 못한다고 해서 답답함을 느끼진 않아요.”
책을 ‘소장’하려는 시대,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을 묻자 그는 “‘소장’도 ‘소비’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답했다. “소장하고 싶은 분들이 많아지는 트렌드라면,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따라가야 하는 게 책을 만드는 사람의 본분이겠죠. 무제에서 나오는 책이 하나의 아트워크처럼 비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아직 배워가는 과정이지만, 디자인 면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박정민은 자신의 취향만으로 결과물을 내지 않는다. “영화든 책이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작업이죠. 저의 취향을 어느 정도 녹일 순 있어도, 고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존경하는 영화계, 출판계 선배님들도 그런 과정을 통해 본인의 색깔을 만들어가셨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그에게 ‘예민함’이란 무엇일까.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제가 손해보는 건 상관없는데, 나 때문에 함께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민해질 때가 있죠. 배우로서도, 출판사 대표로서도 늘 예민하게 나 자신을 주시하고 있어야 해요. 그럼에도 실수할 때가 있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책방이 사라졌어도, 그 시간은 그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찾아와주신 손님들, 함께 운영했던 친구, 그리고 끝까지 버텨준 직원들 덕분에 행복한 기억이에요. 책방이라는 공간과 책이라는 매체를 조금 더 깊이 알게 됐고, 책과 더 가까워진 느낌도 들어요.”
 
박정민이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박정민이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배우 박정민, 출판인 박정민, 그리고 인간 박정민이 앞으로 어떻게 공존하길 바라냐고 묻자 그는 담담히 웃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모두가 저니까요. 공존하며 시작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될 것 같아요. 배우와 출판인, 그 두 직업이 제 안에서 어떻게 공존했는지.”

그에게도 꿈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화려한 미래상이 아니다. “저는 과거에 집착하는 인간이라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돌이켜 보면 마음에 담아둘 정도로 행복했던 시절도 없었던 것 같고… 늘 스트레스와 불안, 고민 속에서 살았나 봐요. 그래서 꿈이 하나 있다면, 언젠가는 이 버석한 마음들이 꼭 여지없는 행복을 느껴봤으면 해요. 마음속에 두고 싶은 ‘한 시절’을 꼭 만나보고 싶어요.”

지금 이 시대에 책을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말했다. “책은 아주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 만들어오던 것이에요. 거기에 큰 의미가 있을까요. 책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자신을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자신을 믿는 창작자만큼 멋진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제가 그걸 잘 못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하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박정민은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 더 좋은 사람, 조금 더 좋은 배우, 그리고 조금 더 좋은 출판인이 되기 위해 묵묵히 하루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박정민과 사진 김호이 기자
박정민과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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