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시청광장-청계천-조계사 연등투어.. 대한민국 5월관광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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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21-05-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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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출처: media Buddha.net]

어둠이 밀려오고 가로등이 켜질 무렵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갔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연등회(燃燈會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2020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열리는 도심으로 연등투어를 떠나기 위함이다. 몇 시간 전에 동행인을 모으고자 주변의 지인 몇명에게 문자를 날린 덕분에 번개팅 단체관광이 되었다. 해마다 5월에만 볼 수 있는 등불관광은 종로를 찾는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눈 호사거리다. 이즈음은 전염병 창궐로 인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한 장거리 여행조차도 모두가 부담스럽게 여긴다. 더우기 해외여행은 아예 불가능한 시절이라 ‘동네나들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주변관광지와 동네맛집을 검색하는 일은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다시피 했다.
 

[시청앞 탑 - 원철스님 제공]

서울시청 앞은 넓은 잔디광장과 높은 빌딩들이 만드는 수평과 수직이 함께 조화미를 이루는 곳이다. 그 자리에 해마다 5월이 되면 새로운 디자인의 종이건축물이 등장한다. 올해는 20m 높이 탑(塔)빌딩이다.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11호)을 전통등으로 형상화한 후 방수처리된 특수 한지를 이용하여 실물크기로 재현했다. 은은한 불빛과 함께 전통적인 모습을 지닌 등탑이지만 주변의 현대식 빌딩들과도 잘 어울린다. 동서남북으로 걸으면서 바라보기를 반복하다보니 저절로 탑돌이가 된다. 또 잔디광장을 가로지르면서 가까이 혹은 멀리서 몇 번 거리를 조정해가며 살폈다. 덕수궁을 뒷배경으로 삼으니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우뚝 선 탑의 본래위용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기부처님과 마야부인등 - 원철스님 제공]

연등축제의 주인공은 아기부처님과 어머니 마야부인을 형상화한 장엄등이라 하겠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5월인 까닭을 설명해주는 또다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의 달 이미지에 가장 어울리는 등이 되었다. 청계천 들머리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기 부처님등을 위시로 하여 갖가지 모양의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흐르는 물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채 물과 함께 흐른다. 그 앞에서 ‘산이 물 위로 간다(東山水上行)’는 운문(864~949)선사의 말씀을 잠시 비틀어 ‘탑이 물 위로 간다’라고 바꾸는 말장난을 하며 풍광을 즐겼다.

옛기록에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등을 달아주는 일을 빠트리지 않았다. 특히 잉어등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바램을 담은 것이다. 잉어가 힘차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 폭포관문을 통과하면서 용이 된다는 ‘등용문’ 이야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쓰시마(對馬島)에 들렀을 때 초등학교 운동장과 병설 유치원 건물에서 하늘 높이 힘차게 흔들리는 잉어모양의 연(鳶)을 더러 만나곤 했다. 가이드가 설명했던 등용문 스토리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서거정(1420~1488)이 한양10경을 노래한 시 가운데 ‘종로거리의 관등(觀燈 등 즐기기)’에도 어린이들의 모습을 빼놓지 않았다. “동쪽거리와 서편 시장가 모두 대낮같은데 아이들이 뛰는 것이 꼬리 긴 원숭이보다 빠르네(兒童狂走疾於貁)“라고 하면서 어린이들이 연등축제의 또다른 주인공임을 알려준다. 설이나 추석처럼 사월초파일에도 때때옷을 입혔다. 어린아이에게 설빔 추석빔처럼 ‘초파일빔’으로 지금의 어린이날처럼 대접했던 것이다. 그날 색동옷을 입은 남녀 어린이들로 거리가 형형색색 꽃밭을 이루었다고 한다.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어린이날을 5월로 정한 것도 아마 등불놀이 나온 아이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천도교 회관 마당에는 어린이날 제정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울만큼 의미있는 날이 되었다. 돌비석에 조명이 더해지면 그대로 석등이 된다.

어린이라고 해서 마냥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적극적 능동성에 대하여 성현(1439~1504)은 ‘용재총화’에서 “아이들이 종이를 오려 깃발을 만들어... 떼를 지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등불 만드는 도구를 모으는 호기(呼旗)놀이를 했다”고 기록했다. 부모가 달아주는 등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등을 만들기 위하여 직접 등 재료와 필요한 비용을 모금하는 어른스러움도 함께 갖추었던 것이다.

근대 우편업무를 시작한 사적지인 우정국 앞쪽에 솟대처럼 세워놓은 수많은 등간(燈竿 등을 단 기둥)도 이채롭다. 홍석모(1781~1857)가 정리한 ‘동국세시기’에는 “등간에는 자녀 숫자대로 등을 달아 주위를 밝히면 길(吉)하다”고 했다. 경쟁하듯 남들보다 높이 달려고 애를 썼다는 조상들의 자식사랑 흔적이기도 하다. 그 자식들은 색동옷 차림의 연꽃동녀 초롱동자가 되어 불교중앙박물관 입구에서 오가는 이들에게 천진불의 미소를 날리며 서있다. 조계사 일주문 앞 룸비니 동산은 아기부처님 모습과 어머니 마야부인을 형용한 명품 등 때문에 인증샷의 명소가 되었다.

어쨋거나 연등투어의 백미는 조계사 마당이다. 넓은 마당에 색색의 팔각등 수만개가 아예 하늘을 가렸다. 등불로 지붕을 만든 거대한 텐트처럼 보인다. 땅은 물론 하늘까지 ‘희망과 치유’의 빛을 밝히고 있다. 이제 코로나19가 마무리되면 연등축제는 예전처럼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 5월관광의 으뜸자리를 되찾게 될 것이다.
 

[등간 - 원철스님 제공]

 

[연꽃동녀 초롱동자 - 원철스님 제공]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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