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무역전쟁] 미중결투를 이젠 多者(다자)의 틀 속에 녹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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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8-11-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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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바이두]



미·중(美中) 무역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개인적으론 고민스러웠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제는 중국에 기대고 있는 이런 이중적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미·소(美蘇) 냉전시대에 태어나고 자라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혼란스러웠다. 과거엔 안보도 경제도 다 미국에 기댔다. ‘안보-경제 불일치’ 딜레마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對中) 수출이 대미(對美) 수출보다 훨씬 많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커졌다.

안보를 우선하라고?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미·중 사이에서 곤욕을 치른 게 엊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한·미·일 군사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사드 추가 배치도 안 하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을 약속하고서야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사드 사태로 입은 경제적 손해가 15조원에 이른다.

미·중 무역전쟁은 보호무역을 확산하고 교역환경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치명적이다. 미국이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총 수출은 0.03%(1억9000만 달러) 감소할 걸로 무역협회는 추정했다. 세계 관세율이 10%로 높아질 경우, 한국의 총 수출은 173억 달러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은 0.6% 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한다.

대만도 우리처럼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본토)에 의존하는 나라다. 대만의 대(對)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1302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41.1%에 달한다. 한국의 24.8%보다 훨씬 대중 의존도가 높다. 이런 편중을 줄이기 위해 대만은 2017년부터 신(新)남향정책을 추진 중이다. 아세안 10개국, 남아시아 6개국, 호주, 뉴질랜드 등 모두 18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통한 긴밀한 경제 파트너십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패권전쟁의 서곡이나 다름없기에 통상 차원에서만 볼 건 아니다. 미·중은 이미 ‘성장하는 신흥국가와 기존 패권국가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투키디데스(Thucydides)의 함정에 빠졌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힘의 중심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옮겨갈 때는 전쟁이 일어난다’는 세력전이론(Power Transition)의 관점에서다. 강대국 정치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시카고대학 교수는 중국의 국력이 미국과 맞먹는 시점이 되면 양국은 충돌할 거라고 단언한다.

물론 예측이 다 맞는 건 아니다. 과거에도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은 미·소 양극(兩極)체제가 해체되면 전쟁이 일어나고, 세계질서도 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이 중심이 되는 다극(多極)체제로 바뀔 거라고 했지만 맞지 않았다. 총 한 방 안 쏘고 양극체제는 무너졌고, 세계는 미국 단일 파워의 1극(단극)체제가 됐다. 지금도 미·중관계가 오히려 협력적 공생관계를 이어갈 거란 낙관적 관측도 많다.

그럼에도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 한다. 미래학자 최윤식은 미·중 패권전쟁이 “한국을 잃어버린 20년으로 빠트리는 방아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중으로부터 보호무역주의의 협공을 받아 제2차 제조업 공동화가 일어나고, 중국의 추격으로 10∼15년 내에 글로벌 시장 기존 점유율의 50∼80%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향후 30년 동안 미국의 시대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최윤식, '앞으로 5년 미중전쟁 시나리오', 2018년). 한마디로 미국 편에 서라는 얘기다. 이춘근(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미동맹상 미국 편에 서야 할 법적·도덕적 의무도 있다고 지적한다.

대북정책의 틀도 다시 짜야 한다. 역대 정권은 모두 미·중관계가 좋았거나, 좋을 것으로 보고 대북정책을 폈다. 이제 그 전제가 흔들린다면 조정이 불가피해진다. 선(先)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정부의 ‘선순환 평화 프로세스’나 ‘한반도 운전자론’부터 얼마나 통할지 의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의 정재원은 다자적(多者的) 해결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를 대변한다. 그는 지난 9월 내놓은 정책연구서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조기 타결되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수출 감소를 상당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처방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처방과 궤를 같이한다.

다자적 접근은 안보 차원에서도 여전히 유용하다. 2005년 9·29선언의 악몽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의 해결과 남북, 북·미관계의 정상화는 결국 6자회담 같은 다자의 틀에서 해결해야 한다. 부딪치는 미·중의 칼을 다자의 틀 안에서 녹여 보습으로 만들어야 한다. 1995년 미국과 수교 이후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베트남의 전략을 시사주간 타임은 최근 이렇게 소개했다. ‘적과 친구를 팔 길이 안에 둔다(keeping both friend and foe at arm’s length)'. 장기적으론 우리도 이렇게 가야 하나 그러기엔 넘어야 할 산이 아직은 많다.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동신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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