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유령화폐' 돼 가는 인민폐, 中 '현금거부' 행태 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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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8-07-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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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민은행, 공공·민간 결제시장 점검 나서

  • 모바일결제 보편화, 대놓고 "현금 싫어요"

  • 법정화폐 위상 흔들, 지역격차 조장 비판

[그래픽=이재호 기자 ]


중국 장쑤성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황펑(黃峰)씨는 교통법규 위반 벌금을 내러 경찰서에 갔다가 현금 수령을 거부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현지 지방정부의 '캐시리스 시티(cashless city·현금 없는 도시)' 정책 시행으로 벌금은 물론 공과금도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납부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황씨는 여태껏 사용한 적 없던 위챗페이(微信支付) 계정을 새로 만든 뒤에야 벌금을 내고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30대 워킹맘 리숴(李爍)씨는 놀이터에서 놀던 네 살배기 아들이 다치자 응급약을 사러 약국에 갔다가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돼 꺼진 것을 확인했다.

약값을 계산하려 지갑을 여는 데 약국 주인이 현금은 받지 않는다며 손사레를 쳤다. 리씨는 우는 아이를 들쳐 업고 1km 이상 떨어진 다른 약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모바일 결제의 천국으로 변모하면서 인민폐 현금은 시중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유령 화폐'가 돼 가고 있다.

주요 관광지와 음식점, 슈퍼마켓은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현금을 받지 않는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법정 화폐로서의 위상 약화, 도·농 간 소비 격차 심화, 소비자 선택권 침해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직접 나서 현금 수령을 거부하거나 현금 결제를 배척하는 행태에 철퇴를 가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규모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의 어두운 단면이다.

◆인민은행 '현금 거부' 엄단 발표에 갑론을박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3일 현금 수령을 거부하는 개인·기관에 대한 단속을 벌인 뒤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공고문을 발표했다.

인민은행은 "최근 유통 영역에서 인민폐 사용과 관련해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며 관광지나 음식점, 소매 상점 등에서 현금 결제가 거절당하는 사례를 언급했다.

이어 "행정과 공공서비스 부문, 중·대형 상점 등을 대상으로 악의적이고 차별적인 수단을 동원해 현금을 배척하는 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철저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민은행은 공고일로부터 한 달 내에 불법 행위에 대한 개선 작업을 완료하라고 촉구했다.

둥시먀오(董希淼) 인민대학 중양금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부 지역과 분야에서 현금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며 "특정 정보기술(IT) 기업과 지방정부가 비(非)현금 결제 플랫폼을 구축·운영하며 수익을 나누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은 인민폐가 지불 수단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면 법정 화폐로서의 위상이 약화할 것으로 우려하는 모습이다.

인민은행은 "인민폐는 국가 신용을 구현하는 수단인 만큼 위상을 높여 나가야 한다"며 "현금을 주고받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신뢰도 높은 거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현금 수령 거부는 지불 방식의 다원화와 소비자의 선택권 보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인민은행 관계자는 "현금과 은행 카드, 온라인 및 모바일 결제 등은 각각의 장점이 있다"며 "IT 기반의 결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은행의 공고문 발표 후 반론도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 결제 방식이 중국의 해묵은 위조지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현금 수령을 강제할 경우 인력 충원과 추가 시스템 도입 등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 제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인민은행은 "온라인이나 모바일 결제 시장을 위축시킬 의도는 없다"며 "현금도 다양한 결제 수단 중 하나로 원만하게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지역격차·진입장벽 해소도 '과제'

알리바바(알리페이·支付宝)와 텐센트(위챗페이) 등 IT 기업의 플랫폼을 활용한 결제 규모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의 '2017년 중국 전자상거래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비금융사가 제공하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결제액은 143조2600억 위안(약 2경4183조원)으로 전년보다 44.3% 급증했다.

이 수치는 2014년 24조7200억 위안에서 2015년 49조4800억 위안, 2016년 99조2700억 위안 등으로 확대돼 왔다.

결제의 간편함 때문에 단순 소비재 등 소매 거래액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온라인 소매 거래액은 7조1800억 위안(약 1212조원)으로 전년 대비 32.2% 늘었다.

중국의 전체 소비재 구매액 중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10.8%, 2016년 12.6%, 지난해 15.0% 등으로 확대일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역 격차다. 지난해 기준 온라인 소매 거래액의 85.3%가 베이징과 상하이, 톈진 등 대도시가 밀집해 있는 동부 지역에서 발생한다.

중부와 서부 지역은 각각 8.2%와 5.4%로 집계됐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 지역은 1.1%에 불과하다.

도·농 간 편차도 심하다. 전체 온라인 소매 거래액 중 도시와 농촌의 비중은 8대 2 수준이다. 중국 농촌 지역의 인터넷 보급률은 이제 갓 30%를 넘어섰다.

인민은행이 결제 시장에서 현금이 퇴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선 이유 중 하나도 이같은 문제 의식 때문이다.

모바일 결제 이용률이 낮은 중·서부와 농촌 지역 주민들은 주요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으로 거래되는 재화 중 농산품 비중은 4% 안팎에 불과해 농민들이 모바일 결제 활성화에 따른 수혜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중국 소식통은 "중국 초·중·고등학교 학생의 상당 수가 인민폐에 새겨진 문화 유적이나 각종 도안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현금 사용 빈도가 현저히 떨어진 게 사실"이라며 "인민은행의 이번 조치가 성과를 낼 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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