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희칼럼] 광기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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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법과 정치 대표
입력 2017-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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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칼럼]

 

   [사진=반병희 법과 정치 대표]



광기의 사회

광기의 사회다.
“자살이 훈장이냐, 적폐 명단 하나 추가요.”, “자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 “쥐박이 똘마니 주제에 꼴갑”.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의 죽음과 관련한 반응들이다. “(뛰어내렸다는)창문이 굉장히 좁다”는 진보성향 유명 방송인의 조롱에서부터 유가족을 지칭해 “(국민에게) 대신 사과하라”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사이버공간에서 ‘적폐 퇴치’ 놀이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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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어떤 종교적 명분이나 이념에 앞서는 당위임에도 불구하고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을 수 없다. 집단 뒤에 숨은 광기다.

집단의 광기는 생사람도 잡는다.
‘희대의 악녀, 가족 살인마’. 가수 고(故) 김광석씨의 부인 서해순씨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남편뿐 아니라 친딸(서연양)도 죽였을 것이다’는 음모론은 지상파 방송에서 유력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몇 년째 확대 재생산을 반복했다. 결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까지 나선 경찰의 정밀 수사 결과 무혐의라는,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결론이 났지만 우리사회에서 이미 서씨의 명예가 갈기갈기 찢긴 뒤였다. 희귀성 유전질환을 앓던 딸이 급성 폐렴으로 숨지기 전까지 서씨가 딸을 정성스레 돌봤던 사실이 오히려 드러났다. 80㎞에 이르는 등·하교 길을 매일 왕복하며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거나 준비물을 잊지 않았고 용모도 언제나 단정하게 가꿔준 엄마였다. 한 개인에 대한 ‘범국민적’ 인격살인이었다.

광기(狂氣)는 이성(理性)을 먹이로 산다.
개인으로서 광기와 예술이 만났을 때 이는 극대화된다. 창조, 천재성에 바탕한 승화의 경지까지 이른다. 이때 광기는 현실과 상상력, 열정과 환상적 허구, 균형 잡힌 이성과 매혹적인 정신착란 사이의 불안정한 소통을 넘나들며 위대함을 빚어낸다. 플라톤이 “광기는 하늘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한 이유다.
사드의 '소돔 120일', 고야의 '옷을 입은(벗은) 마야',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뭉크의 '절규', 달리의 '기억의 지속', 베토벤, 슈만, 라흐마니노프, 키스 자렛, 이상의 '오감도', 다다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카프카의 '변신', 영화 '뷰티풀 마인드' 주인공인 존 내시 교수(프린스턴대) 등. 그들의 광기가 아니었으면 태어날 수 없었던 아름다움들이다. 정작 자신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질환에 시달렸지만···.

집단으로서 광기는 파괴와 광포(狂暴)의 동의어이다.
이 경우 광기에는 헛된 자만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과의 상상적 일체감을 통해 본인에게 결여된 자질과 미덕, 능력이 넘쳐난다고 믿는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적대시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비웃음이라도 받으면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진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질서는 안중에도 없다.
광기를 비난하는 것은 모든 도덕적 비판의 첫 번째 요소이자 마지막 요소임을 각오해야 한다. 예컨대 인터넷 공간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을 조금이라도 비판할라 치면 댓글부대들은 괴성을 지르며 집단으로 달려들어 짓밟고 능욕하기를 반복한다. 사생활까지 들춰내 공갈협박을 한다.

이글거리는 복수심과 결합할 때 광기는 광포(狂暴)화한다. 즉흥성, 폭력성, 잔인성, 무질서의 화신이 된다. 정치세력이 부추기면 그 폭발력은 급속히 커진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을 풀어준 신광렬 부장판사. 그의 이름은 한동안 포털을 장악했다. ‘적폐’, ‘처단하다’, ‘부역자 하나 추가’, ‘역사책에 적폐 표본 판사로 이름 석자 새겨야’, ‘소나무 재선충 같은 존재’, ‘대가리를 부숴버려야’ 등 섬뜩한 말들이 봇물을 이뤘다.
집권당 실세 중진들까지 가세했다. 4선 중진의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에 “~~~ 적폐 판사들을 향해 국민과 떼창으로 욕하고 싶다”고, 역시 4선의 변호사 출신 송영길 의원은 “신광렬 판사는 우병우와 TK 동향으로 같은 대학, 연수원 동기, 같은 성향”이라고 신상털기에 나섰다.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고 사법적 판단을 대놓고 부정하고 비방하는 입법부의 중진들이다. 집 나간 이성(理性)을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일까? 광기 서린 군중 ‘선동’일까?

개인이 군중의 일원이 될 때 자신의 본질을 쉽게 잊는다. 대신 착각과 환상에 빠진다. 군중의 어마어마한 숫자 때문에 자신이 마치 엄청난 힘과 결정권을 가진 것처럼 느낀다. 군중 상태에서의 익명, 무책임은 충동적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소 자신의 가치관과 정반대되는 것이라도 서슴없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화한다.
분별력과 의지, 개성, 이성, 비판정신은 완전히 사라지고 폭력과 충동, 감정의 과장, 맹목적 영웅주의에 기꺼이 감동하고 열광한다.

광기의 사회에서 불행은 국민에게 행복을 대담하게 약속할 정도로 사회 주도세력이 사물들의 현실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현란한 언어의 유희와 정교한 정치공학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군중은 정직한 사람을 범죄자로, 강직한 군장성을 권력의 충견으로,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자국 출신 인물을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하고 희화화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더 이상 희망과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이런저런 명분 아래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합리적 보편성을 떠난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이성과 합리를 포기한 광기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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