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희칼럼] 10월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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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논설위원실 실장
입력 2017-10-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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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병희칼럼] 

 

   [사진=반병희 논설실장]


 10월의 단상

물은 순리를 따른다.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막히면 돌아가고, 기울면 빠르게, 넓으면 느릿하다. 개방성과 유연성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다. 물은 무엇보다 본래의 물성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과하다 싶으면 성을 내고, 도리가 아니면 사납게 달려든다. 상징과 현실의 결합이다.
순자(荀子)는 민심을 물로 설명했다. ‘군자주야 서인자수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수즉재주 수즉복주(水則載舟 水則覆舟)’,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전복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당 태종 이세민도 ‘수능재주(水能載舟) 역능복주(亦能覆舟)’라 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한 뒤집을 수도 있다라는 의미다.
권력자가 극렬한 ‘빠’들을 앞세워 민심을 장악하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화를 입는다는 얘기다.
물처럼 민심은 본래 한 곳에 가둘 수 없다. 손아귀에 넣은 듯 하나 어느새 흔적도 없이 빠져나간다. 갈증 난 목을 축여주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거친 소용돌이로 휘몰아친다.

세계의 역사를 바꾼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 중 아르기누사이해전(BC 406)때다.
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아테네군은 육군 중심의 스파르타를 거세게 몰아부쳤다. 파손된 함선소속 병사 1000여 명, 아군의 구조를 기다리던 이들을 제외하면 아테네군으로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날씨 마저 사나워 시간이 없었다. 아테네 해군지휘부(장군 8명)는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구조를 잠시 뒤로 미루고 도망치는 스파르타군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아테네 광장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당초의 승전보에 환호하며 장군들에게 포상을 하려던 시민들은 구조지연 소식에 흥분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자던 일부의 주장은 시민들의 집단적 분노에 파묻혔다. 시민들은 급기야 장군들을 재판에 회부해 6명을 처형했다. 나머지 두 명은 이웃 나라로 망명했다. 시간이 지나 냉정을 찾은 시민들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유능한 장군들을 잃은 아테네해군은 1년 후 치른 해전에서 전멸했고 아테네는 망했다.
호도된 민심이 낳은 결과다.

민심의 속절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정치적 소신을 슬쩍 얹었다가 역사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1938년 9월 30일 영국의 헤스턴 공항. 네빌 체임벌린 총리는 막 도착한 항공기의 트랩을 내리며 영접객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손에는 흰 종이가 쥐어 있었다. 버킹엄궁전으로 향하는 중에도 차창 밖을 향해 그는 흰 종이를 흔들어 댔다. 8km 구간의 인도를 꽉 채운 인파는 열광했다. 흰 종이는 영국과 독일이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히틀러의 서명이 담긴 평화선언 문서(뮌헨협정)였다. 대화, 타협, 평화를 상품으로 총리직에 오른 체임벌린은 전쟁의 공포로부터 국민을 구한 영웅으로 등극했다. 전쟁을 두려워한 국민들(민심)은 총리의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을 지지했다. “(히틀러와 대치를 원하는 처칠처럼)전쟁을 원합니까? 평화를 원합니까? 이 것(흰 종이)은 우리시대의 평화입니다.” 군중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 그러나 그 것은 히틀러가 준 단기어음이었다. 정확히 1년 뒤인 1939년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은 그렇게 일어났다. 민심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체임벌린을 버렸다. 전쟁만은 없어야 한다던 ‘평화의 사도’는 하루아침에 ‘히틀러의 개’로 전락했다. BBC(1999년)는 그를 20세기 영국의 최악의 총리로 선정했다. 냉정한 국제정치의 생리를 도외시한 채 덧 없는 민심과 함께 한 '평화놀이'의 댓가는 너무나도 혹독했다. 

“한때 민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죄송하다.” 짧게 한 마디 하면 될 걸 군색하게 이러 저리 말이 많다. 추석 연휴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착수 소식과 관련해서이다.
2008년, 2011년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을 처리하려 하자 해머, 배척(일명 빠루), 전기톱, 소화전 물대포, 최루탄을 동원해가며 한미FTA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민심을 몰아갔던 세력이 누구였던가? 현 집권 여당과 일부 지식인, 그리고 이에 동조한 시민단체였다. 그들은 "미국 법 아래 한·미 FTA가 있고 그 아래 한국 법이 있다."(한·미 FTA 반대 각계 1000인 선언)고 자극했다. 나라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처럼.
'민심'은 곧 바로 호응했다. 초중고생에서 유모차 부대까지 나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광우병 창궐한다” “맹장수술비가 900만원까지 오른다" 고 울부짖었다. 결과는? 광우병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맹장 수술비는 45만원으로 4만원 올랐을 뿐이다. 독소조항이라던 ISD(투자자·국가 소송제) 역시 단 한 차례도 발동된 적이 없고 FTA 발표이후 이후 한국은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미FTA가 노무현대통령 당시 시작했던 사안임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아이러니하다.
따라서 ‘결단코 반대→독소조항 제거 등 재협상 요구→재협상 반대→개정협상 개시’ 등 편의에 따라 민심을 헷갈리게 한 장본인들이 현 집권세력임을 생각하면 재협상이든 개정협상이든 한마디는 하고 넘어가는 것이 '또다른' 민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우리쪽 민심은 항상 내가 마음대로 할 수있기 때문’에 적당히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좋은 우리와 나쁜 그들, 적에 대한 증오와 내적 결속, 선전선동을 통한 반쯤의 진실, 사실과 페이크 뉴스(추측과 왜곡)의 절묘한 조합, 여론에 호소한 강제와 압박, 현존하는 가치들과 편견의 강화, 모두가 민심을 유도하고 결집시키는 요소들이다.
정치적인 과오나 실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패에서 학습할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정책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검증 받을 지에 대한 관심도 없다. 역사적 판단은 이미 자신들이 내렸으며, 오로지 내가, 우리가 옳기 때문이다. '민심'은 항상 내 것이니까.

이 같은 대중조작과 '민심유용'은 늘 성공할까?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가 지혜를 준다.

“국가는 도깨비 연극 같은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중요하네. 어리석은 자들로 가득 찬 배는 바람이 부는 대로 표류하도록 내버려 두면 될 것이네. 그러면 그 배는 자기 운명을 향해 흘러가겠지. 어리석은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그렇게 되어 버린다네.” (카를 마르크스, 루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1843)

※ 참고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범우사, 2011). 우치다 다쓰루,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이마, 2017). 임지현 김용우 엮음, [대중독재], (책세상, 2007).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문학동네, 2017)를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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