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칼럼] 베이징대학 진징이(金景一) 선생께 ‘쌍궤병행’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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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 동신대교수(정치학)
입력 2017-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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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칼럼]

 

 [사진=이재호 초빙논설위원 · 동신대교수(정치학)]



베이징대학 진징이(金景一) 선생께 ‘쌍궤병행’에 대해 묻다

선생은 중국의 대표적인 한반도문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이징 대학의 교수이자 이 대학의 연구모임인 한반도문제포럼의 좌장이기도 하고요. 선생이 한국의 한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칼럼은 주목도가 높습니다. 저 또한 빼놓지 않고 봅니다. 중국이나 북한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선생의 글은 균형 잡힌 인식을 갖도록 늘 저를 자극합니다.

선생은 일관되게 북핵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제기합니다. 한겨레(9월 11일자)에 실린 칼럼 ‘북핵과 북·미 갈등, 중·미 갈등’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또는 핵 개발로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다. 그렇지만 미국에는 전략적 적대관계의 북한이 필요했다. 북한의 선택은 핵 개발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하지 않아서 북한이 핵을 개발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왜 안 했을까요. 미국은 북한과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선생의 생각입니다. 북한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명분도 생기고, 한국에 무기도 팔 수 있고, 중국도 견제할 수 있다고 본 거지요. 선생은 “결과부터 보면 미국은 북핵 게임에서 전략이익을 챙길 대로 챙겼다.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유달리 강화했고,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도 미국이 원하는 대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선생의 이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이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른바 쌍궤병행(雙軌竝行,북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 동시 진행)과 쌍중단(雙中斷, 북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 등장하는 논리적 배경인 셈입니다. 인민일보가 미국과 서방세계를 겨냥해 “중국 책임론을 조작하고 있다”면서 “방울을 단 사람이 방울을 떼라”(7월 13일)고 일갈한 것도 같은 얘기입니다. 선생은 “북핵은 북·미 갈등에서 비롯됐는데 중국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와 지식인들의 생각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선생의 말대로 쌍궤병행, 쌍중단이 이뤄진다면 그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단연코 중국입니다. 한·미 군사훈련이 중단되고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게 되면 한·미동맹의 이완은 불가피합니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데, 이거야말로 중국이 바라던 바가 아닙니까. 그 대가(代價)로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지 않느냐고 하실지 모르나 어림없는 얘기입니다. 북한에 어디 한두 번 속았습니까. 노무현 정권이 그렇게 공을 들인 2005년 9·19 공동선언도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으로 파기하지 않았습니까. 2008년 6월엔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기 위해 영변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를 벌인 적도 있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많이 불편했을 겁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한 대로 “한반도는 원래 중국의 영토”였는데 미국이 들어와서 반(半) 주인 노릇을 했으니 말입니다. 쌍궤병행과 쌍중단으로 60년 넘게 유지해온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한국까지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오게 되면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래 중국 외교의 최대성과가 되겠군요.

저희 한국인들은 쌍궤병행과 쌍중단에 담긴 이런 함의를 잘 알고 있습니다.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주장대로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졌는지 몰라도 그 정도 보는 눈은 있습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한 것은 장차 통일한반도의 주인이 누가 되느냐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벌인 짓입니다. 북한이 미국이나 중국에 대고 핵미사일을 쏘겠습니까. 목적은 오직 남조선을 옥죄어 적화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2종 세트의 쌍(雙)을 통해 북한에 그럴 시간을 벌어주자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선생과 중국정부는 궁극적으로 동북아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명실상부한 맹주(盟主)가 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중화(中華)의 순리라고 믿겠지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울까요? 선생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국제체제는 늘 균형을 이루려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이른바 평형이론(equilibrium)이지요. 동북아에서 미국이 떨려나가 힘의 공백이 생기면 누군가는 그 공백을 메웁니다. 누굴까요. 일본입니다. 과거에도 미국은 동북아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그 부담을 일본과 나누곤 했습니다. 1969년 닉슨 독트린(아시아 안보는 아시아인이 알아서 챙기라는 닉슨 대통령의 아시아정책)으로 아시아에서 발을 빼게 됐을 때도 그 빈자리에 대신 일본을 앉히려고 했지 않습니까.

쌍궤병행과 쌍중단으로 미국을 내보내고 일본을 불러들이게 되는 건 중국에도 현책이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동북아의 현상유지체제(status quo)를 흔들어 이 지역이 중·일 간 쟁패(爭霸)의 무대가 될 가능성만 키울 뿐입니다. 양국은 과거사 문제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불신과 증오를 안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엔 순망치한(脣亡齒寒)이지만, 일본엔 자신들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匕首)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능하면 양국이 직접 부딪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싫든 좋든 동북아에서 균형자(balancer) 역할을 해온 미국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돕는 것, 그게 중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것입니다. 대북 제재에 진정성을 갖고 동참하는 게 현실적으로 중국에 최선의 대안이라는 얘기지요. 북핵 때문에 동북아의 세력균형체제가 깨지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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