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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6] 영웅의 어린 시절은? ③

배석규 칼럼니스트입력 : 2017-08-10 12:58수정 : 2017-08-1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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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예수게이의 죽음! 그것은 테무진 가족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예수게이가 초원의 빛으로 떠오를 때 모여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떠나기 시작했다.
예수게이가 없는 테무진 가족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예수게이가 전투에서 노획해 오는 전리품을 나눠 갖는 기쁨의 기회도 사라져 버렸다. 또 주군을 섬기면서 덩달아 부산물로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도 없어졌다.
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 타이시우드족들은 줄줄이 테무진의 가족 곁을 떠났다.

이들이 떠나는 것을 말리자 어떤 사람은 "깊은 물이 마르고 흰 돌이 부셔졌다"고 선언하고 오히려 말리는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기도 했다.
여장부 호엘룬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토크기(旗)를 직접 잡고 말을 몰아 몇몇 사람들을 설득해 데리고 오기도 했으나 돌아온 그들도 곧 다시 떠나 가버리고 말았다.
호엘룬은 몽골 전통의 수혼제 대상에서도 외면당한 채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예수게이의 동생마저 떠났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들 가족의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가축 한 마리 없이 초근목피로 살아가는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여장부 호엘룬은 아이들을 꿋꿋하게 키워 나갔다.
게다가 예수게이 경쟁자였던 타이시우드씨족의 족장인 키릴툭은 경쟁자의 살아있는 씨를 말려 후환을 없애려고 나섰다.

이들의 습격을 받고 도망간 테무진은 테르긴운도르라는 숲속에서 아흐레 동안 숨어 있다가 결국 붙잡혔다.
테르긴운도르 산림지역은 지금도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사진 = 카라우순(오논강)]

목에 칼을 쓰고 포로로 붙잡혀 있던 테무진은 보름달이 밝은 날 타이시우드족들이 잔치를 벌이는 틈을 타 감시하던 소년을 목에 쓴 칼로 때려눕힌 뒤 도망을 쳤다.
그리고 추적이 시작되자 카라우순이라는 연못에 숨었다.

여기서 수색대 중의 한사람인 소르칸 시라라는 사람에게 발각되지만 소르칸 시라는 오히려 동료 대원들을 다른 곳으로 따돌린 뒤 테무진을 도망가라고 놓아주었다.
연못을 빠져나온 테무진은 도망가지 않고 소르칸 시라의 집을 찾아가 숨겨줄 것을 요청했다.

당황한 소르칸 시라는 어서 도망가라고 했지만 그의 아들 침바이와 칠라운은 오히려 아버지를 나무라며 테무진을 도와 줘야한다고 나섰다.
결국 소르칸 시라 가족은 멸문지화를 당할 위험 속에서도 양털을 실은 수레 속에 숨겨서 테무진의 목숨을 구해주고 탈출까지 도와줬다.

테무진이 칼을 쓴 채 물 속에 숨어 있었던 곳은 '카라우순'이라는 곳으로 오논 강물이 강 옆으로 흘러들어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카라우순은 지금도 물속에서 자라는 골 풀들이 주위를 뒤덮고 있다.
 

[사진 = 테무진의 탈출(공훈 화가 만디르 작)]

아마도 테무진은 연못 속에 몸을 담근 채 이 골 풀들 사이의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환한 달빛이 내려 비치는 연못의 한 모퉁이 풀숲에서 자칫 발각될 것이 두려워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죽은 듯이 한참을 보냈을 것이다.

▶ 위기상황 속에서 돋보인 침착성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라고는 하지만 밤이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몽골의 기후 특성을 감안하면 테무진은 두려움과 추위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이 처한 처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과 경험은 나중 그가 세계를 웅비하는 과정에서 큰 교훈이 됐다.
먼저 테무진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심사숙고한 뒤 대처하는 침착함을 보였다.

잔칫날을 택해 도망친 것도 그렇고, 도망가라는 소르칸 시라의 충고도 듣지 않고 오히려 그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당황하게 만들면서까지 탈출에 성공한 것도 그렇다.
목에 칼을 쓴 채 도망간다는 것은 한계가 있고 또 말(馬)도 없이 빠져나가서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 뛰어난 사람에 대한 판단력
사람에 대한 그의 정확한 판단력도 돋보이는 부분이다.
소르칸 시라는 평민도 아닌 일종의 세습 노비와 같은 천민 계급이었다.

그러나 그의 결정에 자신의 운명을 맡겼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무리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테무진은 다른 길을 택했을 것이다.

또한 침바이와 칠라운이 보여준 태도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테무진의 친화력을 읽을 수 있고 이러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테무진은 나중에 강력한 너흐르(동지, 충신)집단을 형성할 수 있었다.
소르칸 시라의 두 아들은 나중에 칭기스칸의 너흐르 집단의 중심인물로 활약하게 된다.

특히 둘째아들 칠라운은 사준마(四駿馬, 말처럼 충직한 네 명의 칭기스칸 심복)중 한 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칭기스칸에게 충성을 다했다.

▶ 경험과 고통 속에서 얻은 교훈
포로로 잡혀 있었던 때의 경험과 고통은 테무진이 나중에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에게 큰 가르침이 됐다.
그 동안 테무진은 천민들의 비참한 삶과 귀족들의 방자함, 그리고 동족들 간의 갈등과 불화 등을 직접 목격하면서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됐다.

탈출에 성공한 테무진은 어렵게 다시 가족을 만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배고픔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게다가 타이시우드의 추적에 대한 걱정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테무진이 합류한 뒤 이들 가족은 다시 부르칸 칼둔산을 지나 이흐헨티 산맥의 남쪽으로 이동해 갔다.
 

[사진 = 후흐노르(푸른호수)]

그리고 후흐노르(푸른호수)주변에다 새 삶의 터전을 잡았다.
테무진에게 제2의 삶의 터전이 된 후흐노르는 그의 일생에 있어 출생지인 델리운 볼닥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후흐노르 지도]

이곳에 살면서 테무진은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가는 동시에 초원에 떠오르는 새로운 강자로서의 이미지도 구축하게 된다.
또 이곳을 무대로 칸의 자리에 올라 대몽골 제국을 세우는 기초를 닦게 된다.

어려운 삶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동안 테무진은 어느 듯 열다섯 살이 됐다. 테무진은 그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거나 생활을 꾸려 가는 데 힘을 쏟느라 정혼자 부르테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녀를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테무진은 6백Km 이상의 먼 길을 여행해 옹기라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6년 전의 약속을 그대로 지켜 부르테와 결혼 했다. 부르테의 어머니 초탄은 결혼 예물로 검은담비로 된 외투를 함께 보냈다.

알란고아에서 호엘룬으로 이어진 황금씨족의 어머니 역할을 맡게 된 부르테! 그녀도 알란고아와 호엘룬 못지않은 파란만장하고 험난한 인생 역정에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부르테와의 결혼을 전후해 테무진은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게이 아들로 초원에 이름이 퍼지면서 아버지 시대에 흩어졌던 사람들도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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