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8] 탈핵과 원전, 두 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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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기자
입력 2017-07-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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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홍열]


김 홍열 (초빙 논설위원, 정보사회학 박사)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6월 19일 고리 1호기에 대한 영구정지를 시작으로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건설 여부를 공론화해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탈핵 진영에서는 당연히 환영의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원자력 관련 기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 원자력학회와 한국 방사성폐기물학회, 한국 원자력산업회의는 심포지엄을 열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원자력이 필요한 이유 9가지를 들었다. 9가지 내용을 요약하면, 원자력은 싸고 안전하며 대체 곤란한 에너지라는 것이다. 이 좋은 에너지를 포기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다. 물론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원자력 찬성 논리만큼 많은 반대 근거들을 내세우고 있다.

탈핵론자와 원전론자가 부딪치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성이고 다음이 경제성, 일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체 에너지 또는 에너지 안보에 관한 사항이다. 안전성에 관한 문제는 계속 있어왔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방사능 유출사고가 결정적이었다. 규모 9.0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수소 폭발과 방사능 유출사고가 발생해서 2만여명의 희생자와 17만명의 피난자가 발생했고, 개인적·사회적 트라우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2016년 경주에서 모멘트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 전문가들이 예측을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진 안전지대라고 여겼던 대한민국도 이제 더 이상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원전론자들은 안전성에 관한 일관된 주장을 한다. 한국의 원전 운영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며 후쿠시마 사례와 같은 특별한 사고는 한국에서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일부 동의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핵·원자력을 떠나서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이 갈등에는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두 개의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과학기술의 합리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 기술 역시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자는 주로 과학기술의 전문가에 의해 주장되었고, 후자는 시민사회 진영과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되어왔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관찰 가능한 방법으로 얻어진 체계적 이론에 동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은 사물의 구조, 성질, 법칙 등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이론화한다. 같은 조건 하에서는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분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 이런 과학적 방법론과 지식 체계가 근대 기술 문명을 발전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보며 살고 있다. 과학기술이 없으면 많은 인구가 지구 상에 존재하기 힘들다. 우주선을 만들어 달에 사람도 보냈고 무선 통신도 만들어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전염병에 의한 집단 사망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사시사철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과학기술은 지구를 파라다이스로 만들지 못했고 많은 후유증을 남겨놓고 있다. 핵·원자력의 안전성 논쟁은 예외로 하더라도 유전자 변형 작물 GMO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화석에너지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바다는 플라스틱으로 채워져 가고 있고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 하나로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불행한 결과는 과학기술의 책임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운영하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과학기술을 잘 쓰면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반은 동의할 수 있고 반은 동의하기 힘들다.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기술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모든 사람이 합리적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개인과 조직의 이해를 위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피해는 고스란히 대다수 국민에게 전가된다.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다. 지금의 과학기술은 하나의 완성된 체계가 아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늘 절대적 진리로 군림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전의 지식 체계가 부정되고 새롭게 구축되는 이론도 있고 완성된 듯 보이는 이론도 새로운 실험 환경 속에서 다시 규정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지식체계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시대가 흐르면 당연히 과학기술 역시 변화되고 수정된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수용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과학기술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불안한 과학기술 위에 구축되고 비합리적 판단의 가능성이 있는 관리자들이 운영하는 핵발전소에 우리의 미래를 위탁하기에는 너무 불안하다.

핵발전소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거대한 블랙박스다. 너무 전문적이라서 일반인들은 제대로 알기 어렵다.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은 폐쇄적 측면도 강하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대형 사고의 가능성이 늘 상존한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들이다. 이제 에너지도 전문가들의 영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된다. 핵발전소의 위험 가능성을 정확하게 보고하고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된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는 국민의 집단 지성을 신뢰해도 좋다. 찬반 토론을 통해 합리적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불안해 보이지만 믿고 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핵발전소가 에너지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미래까지 동반할 수는 없다. 핵이 없어도 에너지 사용에 문제가 없다면 좋은 미래다. 만들 수 있다면 그런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는 과학기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의지에 의해 창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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