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서울시 노동시간 단축 정책, 노동자 삶의 질 향상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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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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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혜원 동덕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권혜원 동덕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사진=서울시 제공]


헤어롤 2개로 ‘워킹맘’의 상징이 된 이정미 전 재판관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웠다. 애들이 자면 일을 하고,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잠은 짬짬이 잤다.” 잠의 빈곤,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빈곤이 어디 이정미 전 재판관만의 고충이었겠는가.

지난 1월 15일 보건복지부 소속 사무관이 반복되는 새벽 출근과 야근 끝에 직장에서 심장이 멎은 채 발견됐을 때도 사인은 과로사였다. 이 같은 과로사회의 기저에는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장시간 노동시간체제가 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취업자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길다. 일차적으로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약한 제도적 규제가 문제다.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에 연장근로한도 12시간으로 1주일에 52시간을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행정해석이 주말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어 최장 68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근로시간 특례업종 지정으로 일부 업종에서는 노동시간이 과도하게 허용되고 있다.

이 같은 장시간 노동체제의 위험경보는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울리고 있다. OECD가 발표한 ‘2015년 삶의 질’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에 그쳤다. 한국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짧다. 특히 한국 아빠와 아이의 교감 시간은 하루 6분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체제가 야기한 일·가정 갈등은 직장 여성들의 경력단절의 근본 원인이다. 장시간근로가 규범으로 자리 잡은 곳에서는 일하는 시간에 투여하는 과도한 시간 압박이 일과 가정 양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야근과 연장근로에 의해 부모권을 박탈당한 워킹대디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녀와의 교감시간 6분이라는 숫자는 일하는 시간의 과잉이 초래한 피폐한 가족의 일상,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빈곤을 보여준다. 재생산에 필요한 최소한의 잠과 휴식의 결핍에 따른 과로사의 위험도 보편적이며 위협적인 수준이다. 대한만성피로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 3명 중 1명이 과로사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파괴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장시간 근로체제의 개선은 매우 시급하다. 제도적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고 특례업종 지정을 폐지하는 등 초과 근로시간 한도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고 획기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추구해야 한다. 또 스웨덴 예테보리시의 하루 6시간 노동시간단축을 교훈 삼아 공공기관에서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해 민간기업의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서울시가 지자체 최초로 노동시간 단축모델을 발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시는 지난 1월 23일 주 40시간 상한제와 최소 휴식시간·휴가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서울형 노동시간 단축계획을 발표하고 서울신용보증재단·서울의료원 노사와 노동시간 단축 협약을 맺었다. 올해 3개 기관에서 시범 운영 후 2018년 전 투자출연기관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시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조금 덜 일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다’는 취지를 살려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만연된 장시간 노동관행을 개선해 노동자의 삶의 질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 이상 일하는 시간에 의해 삶의 다른 모든 시간들이 압사당해 노동자의 행복과 건강·삶이 위협받는 사회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시에서 시작한 노동시간 단축 실험이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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