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365]경영입문 17년만에 ‘쉼표’ 찍은 이재용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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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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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 차장

“이것이 1라인이고, 저것이 2라인이지? 그 옆에 3라인이 있으면 참 모양이 좋겠네.”

1987년 경기 기흥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임원들에게 이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에는 그룹 내에서조차 반도체 사업에 대한 반대 의견이 팽배했다. 1983년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한 이른바 ‘도쿄 선언’ 이후 삼성은 그룹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공장을 완성했으나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로부터 얼마 뒤, 호암은 당시 공장장인 이윤우 상무(현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 삼성전자 비상근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주 기공식을 할테니 준비하라”고 전격 지시했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상황에서 마침내 기공식이 진행됐고, 이듬해 3라인은 완공됐다. 안타깝게도 호암은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87년 별세했다.

3라인이 완공된 뒤 메모리 반도체 대호황이 찾아 왔다. 3라인에서 물건을 뽑아내는 족족 다 팔렸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삼성으로 전화를 걸어 물건 좀 보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한다. 3라인은 그동안 삼성의 반도체 사업 누적적자를 다 메꾸고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준 효자로 탈바꿈했다.

비슷한 시기 삼성그룹 총수에 오른 이건희 회장 앞에도 반도체 사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 결정이 놓여있었다. 4메가 D램 개발에 있어 웨이퍼 회로 기판에 부품을 적용하는 방식을 두고 고층건물을 짓듯 쌓는 '스택(Stack)'으로 할 것인지, 지하로 파들어가는 '트렌치(Treanch)'로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다.

두 기술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조차 양산 단계 전까지는 어느 기술이 유리한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미국과 일본의 선진업체들도 같은 입장이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해 보는게 정답이라고 했던가. 이 회장은 지하를 파는 것보다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 수월한데다 문제가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아래 '스택'으로 최종 결정했다. 반면 트렌치를 채택했던 당시 선두주자인 도시바는 생산성 저하로 힘을 잃었다.

호암과 이 회장의 결정은 1993년 삼성전자가 D램 시장 세계 1위에 오르는 기반이 됐다. 범용 제품으로 불리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 1위와 2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은 성능의 반도체를 가장 먼저 개발하면 60달러를 받을 수 있으나 1년 후 개발하면 1달러 50센트 밖에 못 받는다.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반도체 사업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그룹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며 막대한 투자를 적기에 해야 성공하는 사업이다. 한 번 발을 들이면 평생을 상시적인 위기의식 속에서 지내야 하는 스트레스 사업이다.

오너 경영인의 역할은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하는 것이다. 수많은 전문경영인과 전문가들, 이해관계자들이 내놓는 조언을 모두 취합한 뒤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오너 경영인의 몫이다. 선택에 따르는 부담감은 실로 엄청나다. 오죽하면 호암이 이 회장에게 기업가의 길을 가지 말길 바란다고 했을까. 하지만 호암과 이 회장은 이 길을 숙명이라 여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했지만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에 오르면서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이 부회장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최근 그가 주도한 삼성의 사업구조개편과 신사업 진출 등은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 등기임원에 올라 본격적인 책임경영시대의 시작도 알렸다.

하지만 결실을 맺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발목을 잡혔다. 경영 입문 후 17년간 숨 가쁘게 이어온 행보에 ‘쉼표’를 찍은 것이다. 쉼표의 기간은 짧을수록 좋은데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는 경영인이다. 구속을 통한 고통 대신 '선택'이라는 큰 부담을 지워 삼성과 한국경제를 살리는 데 매진토록 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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