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발권력 동원하려는 정부, 역사상 이런 선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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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5-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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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금융위원회 브리핑실에서 기업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금융위원회]
 

아주경제 이정주·윤주혜 기자 = "한국은행이 이런 식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는 것은 굉장히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정부가 출자해야 하는 데 재정적 압박이 있으니 꼼수를 쓰고 있다. 손쉬운 방법으로 한은을 동원하려는 것인데, 중앙은행 역사상 이런 선례는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2일 "금융위원회가 구조조정 자본확충을 위해 한국은행을 압박하는 것은 국회를 통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편법이다"고 비난했다. 

통상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다. 때문에 국가재정에 손을 벌릴 경우 국회의 예산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국회를 통하지 않고, 중앙은행을 통해 자본을 확충한다면 좀 더 수월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과 유일호 경제부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판 양적완화'를 거론하며 구조조정 문제와 관련해 한은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수월한 구조조정 방안을 택한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양적완화와 구조조정 자본확충은 별개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전문가들은 동일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임 위원장은 최근 "중앙은행이 국가적 위험요인 해소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한은을 직접 압박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오전 열린 집행간부회의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또 "이제 기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므로 한국은행의 역할 수행 방안에 대해 관계자들은 다시 한번 철저히 점검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이 구조조정의 방패로 거론되면서 야당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 국회를 우회하는 꼼수라는 등의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구조조정 법안을 다뤄 온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구조조정은 양적완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며 "지금은 양적완화 논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국책은행에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우회로 이용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정식으로 재정 투입을 결정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자금 지원 이전에 정책금융기관들에 대한 비전을 내놓고 자본확충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계에서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발권력을 동원하거나 국채를 발행해 한은이 구조조정을 도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며 "관건은 정부가 자신들의 장부에는 채무를 늘리지 않고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채권자들의 손실을 분담시킬 생각은 안하고 왜 국민 세금을 갖다 쓸 생각을 하느냐"며 "채권 금융기관의 손실을 국민에게 전가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당초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확충 방안은 3가지로 거론됐다. 한은의 발권력 이용한 출자 방식, 기획재정부를 통한 정부의 직접 출자, 금융안정기금 사용 방안 등이다. 이 가운데 금융안정기금 활용 방안은 지난 2014년 금산법 개정으로 인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났다. 

최근에는 한은의 발권력 또는 채권매입 등도 거론되고 있다. 먼저, 한은이 수은에 대해 증자를 하는 방식이다. 법개정은 필요 없으나 추가 지원 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필요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은이 산은의 코코본드(조건부 자본증권)를 인수하는 방안도 있다. 이 또한 직접 인수 시 한은법을 개정하거나 정부 보증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산은이 발행한 산금채를 한은이 인수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 역시 산은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은의 산은 출자 방식도 있지만 산은법 개정이 필수다. 

마지막으로 한은이 수은에 직접 증자하는 방식이다. 이는 법 개정 없이 현재도 가능해 현재 금융위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자칫 한은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어, 이주열 총재가 쉽게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한편, 유 부총리와 이 총재는 오는 3∼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릴 '제19차 동아시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와 '제49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차 2일 출국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은의 역할을 두고 공방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서 두 수장의 비공식적인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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