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국가의 행정과 판단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복지·재난·교통·민원에서 경찰·수사와 규제까지 영역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김정래의 AI 국가론'은 AI를 기술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능력과 책임의 문제로 바라본다. 국내외 실제 사례와 데이터를 통해 AI가 행정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검증하고, 공무원과 조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살핀다. 나아가 AI가 공권력과 국민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짚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묻는다. 목표는 AI를 경계하는 국가가 아니라 AI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국가다. [편집자주]
은행 업무도, 쇼핑도, 배달도 시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행정은 왜 아직 근무시간에 맞춰야 할까.
민원실에는 운영시간이 있다. 상담이 끝나면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서비스를 24시간 제공하려면 누군가는 밤에도 자리를 지켜야 했다.
AI가 바꾸는 것은 이 같은 운영방식이다. 싱가포르 정부기술청(GovTech)이 만든 정부 공통 대화형 AI 플랫폼 ‘VICA(Virtual Intelligent Chat Assistant)’는 24시간 국민의 질문을 받는다.
GovTech가 2026년 4월 29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VICA를 사용하는 정부기관은 60곳이 넘는다. 운영되는 챗봇은 100개 이상이고 약 80%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한 달 평균 질문은 80만건이 넘는다.
생활민원은 접수에서 처리기관 배정까지 AI가 들어왔다. 싱가포르의 ‘OneService Chatbot’은 쓰레기나 시설물 고장 같은 민원이 들어오면 내용을 파악해 유형을 분류하고 담당기관으로 넘긴다. 한 달 3만건 이상을 처리하면서 매달 약 2000시간의 업무시간을 줄였다. 민원 해결시간도 최대 2영업일 단축됐다.
영국의 텔퍼드앤드레킨 자치정부(Telford & Wrekin Council)가 2021년 도입한 AI 민원도우미 ‘Ask Tom’은 세금과 복지, 주택, 쓰레기, 도로 등에 관한 질문을 24시간 받는다.
텔퍼드앤드레킨 자치정부가 2025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서비스 이용 확대와 함께 2021년 이후 콜센터 전화 문의는 33% 감소했다. Ask Tom에 접수된 질문의 34%는 기존 근무시간 밖에 들어왔다. 세 건 가운데 한 건이다.
국내에서도 AI를 활용한 민원 대응이 확대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 1월부터 24시간 AI 챗봇 ‘또타24’를 본격 운영했다. 지하철 냉난방 민원을 자동으로 접수하고 행선지와 역사, 운임 정보도 제공한다.
서울시가 2025년 7월 1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또타24가 2024년 접수한 민원은 43만건이 넘는다. 냉난방 민원만 36만건으로 전체 냉난방 민원의 38%를 차지했다.
AI의 역할은 민원 안내와 접수를 넘어 행정 운영체계까지 확대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2024년 8월 6일 전 직원이 돌아가며 맡던 당직제를 폐지하고 ‘AI당지기’를 도입했다. 이유가 있었다. 광주시가 2023년 당직민원 1592건을 분석했더니 1376건, 약 86%가 대중교통 안내와 일반문의 같은 단순·반복 민원이었다.
광주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0콜센터가 민원을 받고,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AI가 맡도록 했다. 대중교통 불편과 분실물 신고, 일반민원을 AI가 접수해 담당기관으로 연결한다. 긴급상황이나 AI 이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재난안전상황실 전담인력이 받는다.
변화는 컸다. 광주시에 따르면 AI당지기 도입 이후 당직민원의 84%를 AI가 자동 응대했다. 직원이 직접 응대하는 유선통화량도 기존 9853건에서 1591건으로 줄었다.
당직에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도 줄었다. 월평균 122명의 공무원이 돌아가며 맡던 당직근무는 AI와 전담인력 3명 체제로 바뀌었다. 광주시 공적조서에는 기존 연 9000만원의 당직수당과 비교해 AI 운영비가 연 900만원으로 기재돼 있다.
AI가 행정의 모든 판단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인 문의와 민원 접수는 AI가 맡고, 긴급상황과 판단이 필요한 업무에는 사람이 대응한다. 행정서비스의 운영시간을 공무원의 근무시간과 분리하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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