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원이 인공지능(AI)으로 복제된 목소리도 재산적 가치를 지닌 퍼블리시티권의 법적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30일 도쿄지방재판소는 '주술회전'과 '골든 카무이' 등에서 목소리 연기를 해온 성우 쓰다 겐지로가 틱톡 운영사를 상대로 낸 영상 삭제 청구 소송에서, 목소리도 퍼블리시티권의 보호를 받는다는 판단을 처음 내놨다. 퍼블리시티권은 이름이나 얼굴, 목소리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요소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리다. 다만 계정과 영상이 이미 삭제돼 데이터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재판부는 이번 소송으로 실질적으로 구제받을 이익이 없다고 보고 쓰다 측의 삭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계정은 2024년 7월부터 2025년 9월 사이 쓰다와 흡사한 저음의 AI 내레이션으로 괴담·음모론 영상을 188편 넘게 제작해 올렸으며, 팔로워는 21만명을 넘었고 월 수익은 50만~75만엔(약 430만~650만원)에 이르렀다. 쓰다 측은 무단으로 목소리를 도용한 행위가 퍼블리시티권 침해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계정 운영자 측은 "게시자의 친구 목소리를 AI에 학습시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며 맞섰다.
AI로 만든 목소리·얼굴을 무단으로 이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사례는 일본에서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일본의 한 비영리단체 '초상퍼블리시티권옹호감시기구'가 발표한 2025년도 실태조사에서는 SNS에 올라온 무단 도용 의심 게시물이 4만건을 넘었고, 이들 게시물의 누적 조회수는 3억3500만회, 추정 경제적 손실은 20억~45억엔(약 170억~39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성 산하 자문기구도 지난달 목소리 역시 초상과 동일하게 퍼블리시티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지침을 내놓으면서, 침해 정도에 따라서는 생성형 AI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는 업체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는 유명인의 이름·초상·음성 등을 영리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명문화하는 '인격표지영리권' 민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4년이 지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법 공백 속에서도 관련 분쟁은 현실화하고 있다. 특허청 산하 지식재산처는 지난 3월 5일 세븐틴·보이넥스트도어·투모로우바이투게더·에스파·아이브·라이즈 등 6개 그룹 소속 아티스트 41명의 초상과 이름을 무단 사용한 포토카드 등 굿즈 5종을 제작·판매한 업체 4곳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들 업체는 지난해 4월 피해자 측에 침해 중단을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퍼블리시티권 침해 관련 정부 차원의 시정명령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행하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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