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둘러싼 주요 제도 현안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의 발행·유통과 사업자 규율 등을 담을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당초 9월로 거론됐던 공청회 일정부터 미뤄지는 분위기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과세 역시 투자자와 업계에서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아직 국회에서 본격적인 심의 절차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이달 말 공청회를 거쳐 10월 국정감사 이후인 11월 법안소위원회에서 법안을 논의하는 일정이 거론됐다. 그러나 정부안 마련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9월 중 공청회 개최도 어려워진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정부안 제출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이미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토대로 11월 법안소위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서나윤 금융위 가상자산과장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정부안 제출이 늦어진다 하더라도 이미 발의안들이 있기 때문에 11월 중 소위가 당연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정부안을 기다리는 데 그치지 말고 의원 발의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 논의와 별개로 국회 차원의 논의를 진행한 뒤 정부안을 병합하는 방식으로 입법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남은 일정이 빠듯하다는 점이다. 10월 국정감사에 이어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예정돼 있는 데다 법안 자체에도 조율해야 할 쟁점이 적지 않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부터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안이 제출되더라도 의원 발의안과의 병합 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입법이 다시 해를 넘길 경우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회사와 핀테크·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제도의 큰 방향을 조기에 제시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할 공식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내년 시행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를 두고도 추가 논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과세된다. 연간 소득에서 250만원을 공제한 뒤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투자자들은 과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타이거리서치가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24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7%가 과세에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대 응답자의 51.5%는 제도가 충분히 보완되면 과세를 수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66.4%는 과세를 위한 행정·전산시스템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답했고, 65.7%는 국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의 거래내역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봤다. 업계에서는 해외 거래정보 확보와 취득가액 산정, 손실 이월공제 등 실제 과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쟁점을 시행 전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세 시행 이후 국내 투자자금이 해외 거래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8월 5대 원화거래소의 자산 순유입액은 2조5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6.8% 감소했다. 코빗과 고팍스에서 해외 거래소로 이동한 자산의 순유출액은 같은 기간 2757억원에서 4802억원으로 74.2% 증가했다. 다만 시장 상황 등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를 과세 영향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9월로 예정됐던 공청회가 미뤄지면서 법안 논의가 해를 넘길 경우 제도 마련이 더 늦어질 수 있다"며 "업계가 진행하고 있는 기술검증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발행과 유통,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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