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l 기본·원칙·상식] AI 속도조절, '안전'인가 '담합'인가

왼쪽부터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사진 AFP·AP연합뉴스
(왼쪽부터)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사진 AFP·AP=연합뉴스]



지난달 12일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가 던진 한마디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반독점 소송으로 돌아왔다. "AI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의 제안에 샘 올트먼, 일론 머스크, 데미스 허사비스가 잇따라 동조하자 미국의 한 소비자 집단이 이를 담합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장의 요지는 단순명료하다.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안전기준과 개발속도를 정하는 것은 자유이자 의무에 가깝다. 하지만 경쟁사끼리 그 결정을 공유하는 순간 셔먼법 제1조가 금지하는 담합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이 흥미로운 지점은 통상적인 담합 사건과 결이 다르다는 데 있다. 가격이나 생산량 담합은 소비자 후생을 갉아먹는 구조가 명확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안전'이라는 명분을 두르고 있다. AI 개발 속도를 늦추는 것이 인류에게 이롭다는 그들의 주장은 공감할 부분도 적잖아 있지만 그 조절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의 합의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독점법은 결과의 선의가 아니라 합의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다.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경쟁사들이 모여 업계 전체의 보폭을 맞추기로 했다면 그 자체가 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라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의 핵심이다.

법정에서는 명분보다 '증거'가 먼저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셔먼법 제1조가 규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쟁사 간 '합의'이지 각자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해 비슷하게 행동하는 '의식적 행위' 자체는 아니다.

미국 법원은 오래전부터 공개 발언 이후 경쟁사들이 나란히 움직였다는 정황만으로는 담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 의사 교환이나 상호 의존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아모데이의 글에 다른 CEO들이 잇따라 동의를 표한 것을 사전 조율의 결과로 볼지, 각자의 독립적 판단이 우연히 겹친 것으로 볼지가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법리적 승패를 떠나 현 상황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시장을 장악한 극소수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몇 줄의 공개 발언과 그에 대한 동조만으로 업계 전체의 속도를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업이 스스로 세계 질서를 만드는 '초기업 시대'를 극단적으로 상징한다. 여기에 더해 대중들 역시 별다른 저항 없이 이를 받아들이려 한다는 점은 더 무서운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선을 긋고 트럼프 대통령까지 "중국만 이롭게 할 것"이라 비판하며 반대 진영을 자처하고 나서며 이들의 합의는 견제 받기 시작했다. 외부 견제가 없었다면 지배적 사업자 몇 명의 합의가 아무 검증 없이 곧 산업의 규칙이 될 뻔한 셈이다. 소비자도, 규제 당국도, 심지어 이들과 경쟁하는 다른 기업들조차 그 결정에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반독점법을 비롯한 규제란 애초에 시장을 지배한 소수의 힘을 외부에서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세기 말 트러스트 규제가 그러했듯이 규제는 산업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리라는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끼리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선언하는 상황을 자율규제의 모범 사례처럼 순진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감시받아야 할 자들이 감시자를 자처하는 순간 그 기준은 시장과 공익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향해 설계될 수밖에 없다.

이번 소송이 담합을 입증하든 못하든 산업을 장악한 기업들의 자발적 합의가 규제의 출발점이 되는 선례만큼은 남겨서는 안 된다. 규제는 그들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밖에서 세워지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CEO들의 선의를 믿는 일이 아니라 그 선의조차 검증할 수 있는 외부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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