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이 사망한 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대상을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로 한정한 형사소송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4일 형사소송법 424조 4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법불합치는 법률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즉각 무효로 하면 발생할 혼란을 막기 위해 개정 시한을 두고 효력을 잠시 유지하는 결정이다. 이에 따라 헌재는 2027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국회가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해당 조항을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앞서 고(故) 박모씨는 이른바 '여수·순천 사건'에 연루돼 포고령 2호 위반죄로 징역형을 확정받아 대전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1950년 6월 28일쯤부터 7월 17일쯤 사이에 방첩부대, 헌병대, 경찰 등에 의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법적 절차 없이 살해됐다. 고 지모씨는 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내란 선동·특수공무집행방해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고, 해당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박씨와 지씨의 조카는 해당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들이 형사소송법상 재심 청구권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형사소송법 424조 4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형사소송법 424조 4호는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가 사망하거나 심신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그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에 해당하는 자는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사건에서는 해당 조항이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가 아닌 친족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권자의 범위를 정한 심판 대상 조항 자체에 일반적으로는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형사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과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조작 의혹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심판 대상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정당하고 적정한 재판이라는 법치주의의 또 다른 이념을 도외시한 것으로써 재판청구권에 관한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기본권 보호 의무를 지는 국가가 그 의무를 위반한 채 오히려 판결이라는 형식을 빌려 국민에 대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있어서까지 그 유죄의 확정판결을 유지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재심 청구권자가 아닌 친족의 재판청구권 보장의 필요성을 희생시킬 정도로 중대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헌법불합치 판단에 대해서는 "단순 위헌 결정을 해 당장 그 효력을 상실시키게 되면 해당 유형의 사건에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그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 역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어지게 돼 법적 공백 상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은 망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그의 가까운 친족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로 재심 청구권자를 한정하고 있다"며 "이는 구체적 정의 내지 재판의 적정성과 법적 안정성을 조화시키고, 사법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지나치게 자의적인 입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합헌 의견을 냈다.
헌재 관계자는 "향후 이 사건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에 따른 입법 개선이 이뤄질 경우 형사 재심을 통해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과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조작 의혹 사건의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이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 통합과 민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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