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어느덧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초기 시위보다 참석 규모는 줄었고 의미가 퇴색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참정권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시민도 존재한다.
잠실 개표소에서 만난 20대 남성은 '선거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끝'이라는 피켓을 들고 기자에게 "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이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다.
이번 지선은 역대 지선을 통틀어 두 번째로 높은 61%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통상 지선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 유권자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경향이 짙다. 그럼에도 소중한 한 표를 통해 국민 주권을 온전히 실현하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열망이 이번 지선에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유권자의 성숙한 참정권 행사와 반대로 이를 관리 및 총괄해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지울 수 없게 됐다. 부족한 투표용지 탓에 유권자들은 정규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를 넘긴 뒤에야 간신히 투표하거나 투표를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당일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일선 투표소 현장에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예견했다. 선거 당일 오전 11시 34분경 송파구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을 인지하고 서울시선관위에 문의했지만, 즉각적인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5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해 중앙선관위에 전했다.
선거 관리의 컨트롤타워인 중앙선관위의 노태악 전 위원장도 투표 마감 시간을 불과 40분 남겨둔 시점에야 첫 보고를 받았고, 허철훈 전 사무총장도 오후 5시 10분에야 상황을 인지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안일함이 확인됐다.
국민적으로 더 큰 공분을 산 것은 '선거 관리'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선관위의 지위와 권한을 그대로 남용했다는 점이다. 선관위 관계자들의 외유성 출장 의혹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선거 참관' 등의 목적으로 수천만원에 달하는 선관위 예산을 활용해 몰디브, 코타키나발루 등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노 전 위원장도 세 차례의 해외 출장에 배우자를 동반하는 과정에서 숙박비, 항공권 등을 선관위 예산으로 활용했지만, 선관위가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사후 보고서에서는 이런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논란이 제기됐다.
책임은 없고, 이익만 취한 선관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지선 이후 출범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투표용지 보관 상자 분실 의혹, 외유성 출장 의혹 등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압수물 분석과 투표관리원 등의 소환 조사로 당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는 합수본은 노 전 위원장 등 '윗선'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고, 그 과정에서 과실이 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도 향후 개선해야 할 과제다. 그동안 선관위는 국민의 참정권을 위해 독립적으로 운영됐지만, 한편으로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비판받았다. 또 선관위의 리더는 현직 법관이 차지하고 있어 선관위의 예산, 조직, 인사 행정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해 공정한 선거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를 비롯한 선관위 시스템 전반의 개선을 통해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건인 참정권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혁신해야 한다. 그 혁신이 오래 걸리더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선관위를 향한 국민의 불신을 없애고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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