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시장이 다시 세입자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통계에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70주 연속 올랐고, 최근 상승률은 10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라섰다. 전세 불안은 특정 인기 단지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전역에서 세입자가 구할 수 있는 집이 줄고, 남은 물건에는 더 많은 수요가 몰리고 있다.
지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KB부동산의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80선을 넘어섰다. 기준선인 100을 크게 웃돈 만큼 공급보다 수요가 우세한 상황이다. 강북권 지수는 서울 평균보다 더 높다. 집값 부담으로 매수 대신 전세에 머무는 수요는 여전한데, 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줄고 있다. 세입자에게는 전셋값 못지않게 옮겨갈 집이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전세난의 본질은 가격보다 선택지의 축소다. 지금의 전세난은 수요 증가보다 공급 축소의 성격이 강하다. 집주인은 순수 전세보다 월세나 반전세를 선호하고, 기존 세입자는 높아진 주거비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기존 세입자가 눌러앉을수록 새로 나오는 전세 물건은 더 줄어든다. 전세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세 공급이 줄고 있는 것이다.
월세화는 전세난을 주거비 부담으로 확산시킨다. 신규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세를 찾는 세입자는 더 좁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보증금을 더 올리거나, 월세 부담을 감수하거나, 원하지 않는 지역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커진다. 월세 전환이 빨라질수록 전세난은 서민과 청년층의 체감 부담으로 번진다.
입주물량 부족은 하반기 전세시장의 또 다른 변수다. 서울에서 입주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매매시장보다 전세시장에 먼저 충격을 준다. 새 아파트 입주가 있어야 기존 세입자가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전세 물건도 시장에 나온다. 여기에 정비사업 이주 수요까지 겹치면 특정 지역의 전세 불안은 주변 지역으로 번질 수 있다.
전세대출은 관리하되, 실수요자를 가려내는 방식이어야 한다. 전세대출이 전셋값을 떠받치는 측면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세난이 깊어진 상황에서 대출부터 조이면 무주택 세입자의 부담이 먼저 커진다. 투기성·우회성 대출은 막되 실거주 세입자의 이동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금융 규제는 수급 대책과 함께 가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물량부터 입주 가능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공공임대 공실, 매입임대, 전세임대 물량을 세입자가 실제 들어갈 수 있는 형태로 풀어야 한다. 정비사업 이주 시기도 지역별 전세 상황에 맞춰 분산해야 한다. 월세 부담이 커진 계층에는 세액공제와 주거비 지원을 더 촘촘히 적용해야 한다. 대책의 기준은 발표 물량이 아니라 세입자가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실제 공급을 앞당겨야 한다. 인허가 숫자가 아니라 착공과 입주로 확인되는 물량이 중요하다. 전세 불안은 매매시장으로도 번진다. 전세가 불안하면 임차인은 매수로 밀리고, 매매가격 안정도 어려워진다. 전세난의 해법은 수요를 누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세입자가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을 늘리고, 실제 입주 물량을 앞당겨야 한다. 전세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주거 안정도 오래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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