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체면·공 사상…'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中 문화 코드 읽기

  • 멀티버스와 베이글의 기괴한 상상력 뒤에 숨은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균열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상한 영화다. 멀티버스가 열리고, 손가락이 소시지가 되고, 베이글 하나가 우주의 허무를 삼킨다. 황당하고 기괴한 장면들이 쉼 없이 쏟아진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가슴에 남는 건 우주적 스케일이 아니라 가족의 거리다. 이 영화가 응시하는 건 차원을 넘나드는 모험이 아니라,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의 출발점은 중국계 미국인 이민자 가족이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은 세금 문제, 가게 운영, 남편과의 갈등, 딸 조이와의 불화, 아버지 공공의 시선까지 한꺼번에 감당한다. 이 가족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완전히 미국적이지 않고, 중국 문화를 품고 있지만 온전히 중국 안에 있지도 않다. 혼란스러운 멀티버스는 이 경계인의 삶에서 시작된다.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이속에서 눈에 띄는 코드는 효와 가부장적 질서다. 에블린의 아버지 공공은 가족 안에서 승인권을 가진 존재다. 에블린은 이미 중년의 여성이지만, 공공 앞에서는 여전히 평가받는 딸이다. 그가 젊은 시절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웨이먼드와 미국으로 떠난 설정은 중요하다. 에블린은 자유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에게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 불안은 다시 딸 조이에게 향한다. 에블린은 조이의 여자친구 베키를 공공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다. 조이의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는 일은 에블린에게 개인적인 수용의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의 시선, 가족의 체면, 전통적인 가치관과 충돌하는 일이다. 이 장면에선 오래된 가족질서 앞에서 얼어붙는 부모 세대의 불안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중국 문화에서 효는 단지 부모를 잘 모시는 윤리가 아니다.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일, 부모의 체면을 지켜주는 일, 가문 안에서 '괜찮은 자식'으로 남는 일까지 포함한다. 에블린은 아버지에게 그런 딸이 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산다. 그리고 그 결핍은 딸 조이를 향한 통제로 이어진다. 살이 쪘다는 지적, 무심한 잔소리… 그는 조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따뜻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다니엘 콴 감독은 "미국 내 중국인 가족 사이에서도 비슷한 역동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은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는 '착한 딸'이 될 것을 요구받는 동시에, 미국 여성으로 자라야 한다는 과한 부담도 짊어진다고 짚었다. 조이를 안정되고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 '이상하고, 창조적이며, 엉뚱한' 아시아계 미국 여성으로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중국계 이민자 2세의 정체성 문제로 확장된다. 조이는 미국에서 자란 딸이다. 그는 부모 세대의 언어와 가치관을 온전히 공유하지 않는다. 반면 에블린은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중국식 가족질서 안에 묶여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산다. 그 거리가 모녀 갈등의 원인이다.

언어의 혼재도 이 균열을 선명하게 만든다. 영화 속 가족은 영어, 중국어, 광둥어를 오간다. 세대 간 감정의 어긋남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부모 세대는 미국 사회에서 영어로 버티지만, 깊은 감정은 모국어의 습관 안에 남아 있다. 자녀 세대는 영어로 자신을 설명하지만, 부모의 언어 안에서는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다. 같은 식탁에 앉아 있어도 서로 다른 언어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세탁소 역시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현실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영화 초반 에블린은 세탁소 운영, 세금 서류, 손님 응대, 가족 행사 준비에 치인다. 이 공간은 아메리칸드림의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그 꿈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노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에블린에게 삶은 선택이 아니라 수습이다. 가게를 지키고, 가족을 돌보고, 아버지의 체면을 세우고, 딸을 통제하고, 남편의 감정까지 처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에블린은 중국계 이민자 1세대 여성의 피로를 응축한 인물이다.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고, 생존을 위해 감정을 뒤로 미뤘지만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차가운 사람이 됐다. 영화가 에블린을 젊은 세대가 아니라 부모 세대의 시선에서 따라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은 "인터넷 문화가 세대 차이를 이상한 방식으로 키운다"고 이야기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인터넷과 함께 자랐지만 부모 세대는 다르다는 것이다. 에블린이 시공간이 빠르게 바뀌는 세계관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현대적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세대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객이 부모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 혼란을 보게 만드는 구조인 것이다.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영화의 또 다른 문화적 코드는 음양의 대립과 조화다. 에블린은 질서와 통제를 추구한다. 세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가게를 유지해야 하며, 딸을 바로잡아야 하고, 가족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반면 조이는 혼돈에 가깝다. 조이는 기존 가족질서 안에 얌전히 놓이지 않는다. 우울하고, 엉뚱하고, 분열적이며, 끝내 조부 투파키라는 존재로 세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허무의 얼굴이 된다.

하지만 영화는 질서가 옳고 혼돈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힘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에블린의 통제는 조이를 질식시키고, 조이의 혼돈은 에블린을 붕괴시킨다. 두 사람의 화해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알아보는 방식으로 가능해진다. 이것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음양의 조화와 닮아 있다. 빛과 어둠, 질서와 혼돈,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균형을 찾아야 할 관계다.

허무주의 역시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조부 투파키의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모든 우주를 경험한 존재가 도달한 극단의 공허다. 모든 가능성을 다 보고 난 뒤 하나의 삶은 하찮아진다. 어떤 선택도 절대적이지 않고, 어떤 의미도 영원하지 않다. 거대한 베이글은 그 허무를 시각화한 이미지다.

이 지점은 도교나 불교의 공 사상과도 맞닿아 읽을 수 있다. 물론 특정 종교철학을 직접 설교하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곧 파괴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양적 사유와 통한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면,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의 작은 친절과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의미가 이미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의미를 다시 만들 수 있다.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웨이먼드다. 웨이먼드는 영화 내내 약해 보이는 사람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윤리를 제시한다. 싸움이 아니라 친절, 통제가 아니라 이해, 포기가 아니라 다정함이다. 에블린이 마지막에 적들을 제압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그는 상대를 때려눕히지 않는다. 각자의 결핍을 보고,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건드린다. 이해가 무기가 되는 순간이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다니엘 슈마흐텐베르거는 사랑을 '그 대상을 완전히 아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다니엘 콴 감독은 "조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세상을 파괴하는 힘으로 쓴다면, 에블린은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상대를 이해하는 힘으로 사용한다. 계단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으로 기능하는 이유다.

영화는 효, 가부장제, 체면, 가족주의를 무조건 낡은 것으로만 비난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것을 아름다운 전통으로만 미화하지도 않는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규칙이 어떻게 개인을 질식시키는지, 부모를 향한 효가 어떻게 자식에게 또 다른 통제로 이어지는지, 사랑이 어떻게 상처의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줄 뿐이다.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에블린이 마주하는 수많은 우주는 그가 포기한 삶의 목록이다. 배우가 될 수도 있었고, 더 성공할 수도 있었고,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미국에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내 붙드는 건 가장 초라해 보이는 현재의 삶이다. 세탁소, 세금 서류, 무심한 남편, 상처받은 딸, 어려운 아버지. 바로 그곳에 다시 선택해야 할 사랑이 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도 멀티버스를 통해 우주를 넓혔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때론 우주를 이해하는 일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일 테다. 에블린이 건너뛴 우주는 몇 가지 질문으로 돌아온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오해했나. 그리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자주 서로를 바꾸려 했나.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2026_외국인걷기대회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