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이 열리고 있다. 얼음이 녹는 속도만큼, 해상 물류의 지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북극항로가 제도적 기반을 확보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 북극항로위원회 신설, 관련 특별법 통과, 전문인력 양성과 재정 지원 체계 구축까지 이어지면서 단순한 정책 구호가 아니라 국가 전략 프로젝트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북극항로의 핵심은 거리다.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가 수에즈 운하를 거쳐 약 2만㎞에 이르는 반면, 북극을 통과하는 북극해 항로는 최대 30~40%까지 거리를 줄일 수 있다. 운송 시간 단축은 곧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글로벌 물류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해운은 결국 ‘시간 산업’이다. 하루가 줄어들면 경쟁력이 달라진다.
이 변화는 단순히 물류 비용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북극항로는 에너지, 자원, 군사, 환경까지 얽힌 복합 전략 공간이다.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고, 중국 역시 ‘빙상 실크로드’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도 북극권 거버넌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북극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 새로운 지정학적 중심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명확하다. 참여하지 않으면 배제된다. 북극항로는 ‘준비되면 들어가는 시장’이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히 늦어지는 시장이다. 이번 특별법 통과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책 추진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부처 간 분산돼 있던 기능을 통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은 출발선에 섰다는 의미다.
특히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 신설은 상징적이다. 북극항로는 해양수산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외교, 국방, 산업, 환경, 과학기술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정책의 일관성과 속도를 동시에 확보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극항로는 기회만큼 리스크도 크다. 가장 큰 변수는 자연환경이다. 북극해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기상 조건과 해빙 상황을 안고 있다. 항로가 상시적으로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진출은 오히려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해빙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이는 동시에 환경 리스크를 키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적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북극항로의 상당 부분은 러시아 연안을 따라 형성된다. 국제 제재와 지정학적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항로 확보는 쉽지 않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물류 문제가 아니라 외교 전략과 직결된 사안이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새로운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다.
경제성 역시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거리 단축이 곧바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험료, 쇄빙선 비용, 항만 인프라 부족 등 추가 비용 요소가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특정 시기, 특정 화물에 한해 경제성이 확보되는 수준이다. 따라서 전면적 확대보다는 선별적·단계적 진입 전략이 필요하다.
전문인력 양성 정책이 포함된 것도 중요한 이유다. 북극항로는 기존 해운과 완전히 다른 기술과 운영 방식을 요구한다. 빙해 운항 기술, 극지 기상 분석, 특수 선박 설계 등 새로운 역량이 필요하다. 인력이 준비되지 않으면 산업도 따라올 수 없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력 투자와 기술 개발을 병행해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연관 산업이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운송 루트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 항만, 물류, 조선, 에너지, 보험, 금융까지 연결된다. 이번 법안에서 재정·금융 지원을 명시한 것도 이러한 확장성을 염두에 둔 조치다. 항로 개척은 시작일 뿐이고, 진짜 경쟁은 그 주변 산업에서 벌어진다.
공영항로 개편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가가 운항 결손을 보전하고 공공기관이 운영을 맡는 구조는 초기 시장 형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북극항로 역시 초기에는 시장 논리만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일정 기간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민간 중심의 자생적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북극항로 전략의 핵심은 균형이다. 속도와 신중함, 기회와 리스크,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무리한 선도 전략은 비용 부담으로 돌아오고, 지나친 신중론은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지금은 시작 단계다. 제도가 만들어졌고 방향이 설정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구호가 아니라 데이터, 계획이 아니라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북극항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를 잡을 수 없다.
해양은 한국 경제의 근간이다. 수출 중심 국가에서 물류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북극항로는 그 경쟁력의 새로운 축이 될 수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남은 것은 선택이 아니라 준비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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