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기업승계특별법,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제도만이 아니라 시장도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이 사라지고 있다. 단순한 적자 폐업이 아니다. 흑자를 내고 기술을 가진 기업조차 문을 닫는다. 경영자는 늙어가는데 후계자가 없고, 제3자에게 넘기려 해도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제기된 ‘기업승계특별법’ 논의는 이런 현실에서 출발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처방이 충분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우선 짚어야 할 것은 원인이다. 흑자 기업이 폐업하는 현상을 단순히 ‘제도 실패’로만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물론 가업 승계에 비해 제3자 인수에 세제 혜택이 부족한 것은 분명한 장애 요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중소 제조기업은 낮은 수익률, 불안정한 거래 구조, 내수 의존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겉으로는 흑자지만 미래 성장성이 불투명한 기업에 대해 외부 투자자가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은 시장의 냉정한 판단이다.


결국 기업승계 문제는 세제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문제다. 세금만 낮춘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제 혜택은 일시적인 처방에 그칠 뿐이다.

정진완 우리은행장가운데이 13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김용대 김앤장 법률사무소 가사상속기업승계센터장왼쪽 이중현 삼일회계법인 세무부문 대표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진완 우리은행장(가운데)이 13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김용대 김앤장 법률사무소 가사상속기업승계센터장(왼쪽), 이중현 삼일회계법인 세무부문 대표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기업승계특별법은 필요하다. 가족 승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제3자 인수를 통한 기업 존속은 현실적인 대안이다. 특히 기술과 인력을 유지하는 관점에서 M&A는 폐업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다. 따라서 가업 승계에 준하는 세제 지원과 절차 간소화는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외 사례를 들 때도 보다 정확해야 한다. 독일의 중소기업 경쟁력은 단순히 ‘세대를 잇는 구조’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 투자와 안정적 거래 관계, 그리고 높은 기술 경쟁력에 기반한 것이다. 가족 승계 중심의 모델과 제3자 M&A 중심의 모델은 작동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독일을 단순히 모방할 수 없다. 한국 현실에 맞는 승계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또 하나의 난제는 속도와 보호의 균형이다. 기업 승계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기업 가치가 떨어진다. 따라서 절차를 간소화하고 거래를 빠르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한 보호 장치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한다. 해결책은 선택과 집중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정보 접근을 제한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가 확보된 이후에만 핵심 기술을 공개하는 단계적 거래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속도와 보호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는 절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설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수 이후다. 기업승계특별법이 목표로 하는 것은 단순한 거래 활성화가 아니라 기술과 일자리의 유지다. 그러나 민간 투자자는 공익이 아니라 수익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세제 혜택을 받고 기업을 인수한 뒤 핵심 자산만 분리하고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먹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후 관리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정 기간 고용 유지 의무,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제한, 단계별 세제 혜택 환수 조건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리하면 기업승계특별법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제 지원, 절차 개선, 기술 보호, 사후 관리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중소기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정한 거래 구조와 안정적인 수익 기반 없이 승계만 강조하는 것은 뿌리를 두지 않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지금 한국 경제는 겉으로는 버티고 있지만, 산업의 기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대기업도 버틸 수 없다. 기업 승계는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다.


정치권은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서두르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방향은 맞고, 설계는 더 정교해야 한다. 기업을 이어가는 일은 단순한 상속이 아니라 산업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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