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총과 표, 그리고 양심

  • 레오14세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총과 표로 움직이는 권력과 양심과 기준으로 말하는 권력이 다시 마주섰다.  레오 14세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갈등은 그렇게 보인다. 교황은 “전능에 대한 망상”이라며 전쟁과 권력의 오만을 비판하고, 트럼프는 국가의 선택과 현실을 강조한다. 겉으로 보면 도덕과 힘의 충돌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한 대립으로만 읽는 순간, 우리는 지금 시대 권력의 작동 방식을 절반만 이해하게 된다. 정치와 종교는 따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면서 같이 움직인다. 
 

알제리 아프리카 성모 대성당을 방문한 레오 14세 교황 사진EPA 연합뉴스
알제리 아프리카 성모 대성당을 방문한 레오 14세 교황 [사진=EPA 연합뉴스]
 승패로 끝나던 시대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 충돌은 분명한 결론을 남겼다. 11세기 그레고리오 7세 교황과 하인리히 4세 신성로마제국황제의 갈등은 ‘누가 정당한 권력을 갖는가’라는 문제였다. 황제가 주교를 임명하려 하자 교황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황제는 파문당했다. 당시 파문은 단순한 종교적 제재가 아니라 정치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조치였다. 백성들이 황제를 따르지 않을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황제는 눈 덮인 겨울에 카노사 성을 찾아갔다. 맨발로 사흘 동안 눈 밭에 서서 용서를 구했다. 이 사건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의 굴욕이 아니라, 당시 권력 구조를 상징한다. 종교 권력이 정치 권력 위에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14세기에 이르면 상황은 완전히 뒤집힌다. 보니파키우스 8세는 교황의 권위가 왕보다 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선 프랑스국왕 필리프 4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군대를 보내 교황을 공격했고, 교황은 감금과 모욕을 당했다. 이것이 아나니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시대의 전환이었다. 권력의 중심이 교황에서 국가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유럽에서는 왕권이 강화되고, 교황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더 나아가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며 교황의 권위는 크게 약화된다. 마르틴 루터의 비판과 헨리 8세의 국교회 설립은 교황이 더 이상 유럽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는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 시기의 특징은 분명하다.
권력은 충돌을 통해 위계가 정리됐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갔다.


지금은 ‘이기는 싸움’이 아니다


21세기의 권력은 이와 다르다. 교황이 대통령을 파문해 정치적으로 무너뜨릴 수도 없고, 대통령이 교황을 제거할 수도 없다. 권력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리적 지배의 시대에서 상징과 정당성의 시대로 이동한 것이다.


레오 14세는 전쟁을 비판하며 도덕적 기준을 제시한다. 그는 “하느님은 전쟁을 축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국가의 선택과 안보를 강조한다. 그의 언어는 현실과 힘에 기반한다.


겉으로 보면 두 권력은 서로 반대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정치 권력은 도덕적 기준 없이 움직일 수 없고, 종교 권력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정치는 전쟁을 하더라도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국민과 국제사회에 “이것은 정당한 행동이다”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은 지지를 얻기 어렵다. 반대로 종교 권력도 현실을 무시하면 영향력을 잃는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현실과 동떨어지면 사람들은 따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두 권력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같은 문제를 다룬다. 전쟁, 평화, 권력의 한계라는 질문에서 정치와 종교는 동시에 등장한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가능한가’와 ‘옳은가’

정치는 “가능한가”를 묻는다.
종교는 “옳은가”를 묻는다.

이 구분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두 질문이 분리되지 않는다.

정치는 옳다는 명분이 있어야 실행될 수 있다. 아무리 군사적으로 가능해도 정당성이 없으면 내부 반발과 국제적 비판에 직면한다. 반대로 종교는 현실을 고려해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완전히 비현실적인 주장만 반복하면 사회적 힘을 잃게 된다.


이 구조 속에서 두 권력은 서로를 제한한다. 다만 그 방식은 과거와 다르다. 중세에는 파문과 감금 같은 직접적인 힘이 작동했다. 지금은 여론과 명분, 상징이 작동한다.


 교황의 전쟁 비판은 정책을 즉각 중단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제 여론을 움직이고 정치적 부담을 높인다. 이는 정책의 표현이나 강도를 조정하게 만드는 간접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교황 역시 발언의 수위와 시점을 조절한다. 이번 발언에서도 강한 비판을 유지하면서도 논쟁을 확대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현실과의 충돌을 관리하려는 선택이다.

이처럼 정치와 종교는 서로를 완전히 이길 수는 없지만, 서로를 조정할 수는 있다.


충돌이 아니라 균형


결국 지금의 갈등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카노사의 눈밭과 아나니의 궁정에서는 권력의 방향이 분명히 갈렸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그런 결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레오 14세와 도널드 트럼프의 충돌은 지배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해석을 둘러싼 경쟁이다.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권력은 어디까지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과정이다.


힘만으로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고, 정당성만으로는 현실을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두 권력은 대립하면서도 공존한다. 서로를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필요로 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다.
서로를 완전히 이길 수 없는 권력들이, 서로를 의식하며 만들어내는 긴장이다.


그 긴장이 유지되는 한, 이 관계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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