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정의선의 새만금 승부수는 전북도민 참여가 성공 가른다

전북 새만금이 다시 한국 산업정책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규모도 크고, 성격도 예사롭지 않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새만금에 총 9조원을 투입해 AI, 로봇, 수소, 태양광을 아우르는 혁신성장거점을 구축하겠다고 나선 데 이어,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 6곳도 이 사업 지원을 위한 협력에 나설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월 27일 정부와 전북특별자치도와 투자협약을 체결했고, 정책금융기관 협의체는 오는 4월 6일 별도 MOU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구상은 AI 데이터센터 5조8000억원,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 4000억원, 수전해 플랜트 1조원, 태양광 발전 1조3000억원, AI 수소 시티 4000억원 등으로 구성된다. 총 112만4000㎡, 약 34만평 부지에 조성되는 이 계획은 단순한 공장 유치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다음 단계와 지역균형발전의 향방을 함께 묻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읽는 핵심 키워드는 결국 정의선회장이다.  현대차그룹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기업으로 변하려 하는지는 정의선 회장의 전략에서 봐야 한다. 지금 현대차는 더 이상 자동차만 만드는 기업으로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모빌리티 기업을 넘어 AI와 로보틱스, 에너지 솔루션이 결합된 미래기술 기업으로 자신을 재정의하려는 흐름이 분명하다. 새만금 9조 프로젝트는 그 상징적 장면이다. 자동차 생산라인 하나를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에서 학습된 지능이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수소 생태계와 연결되는 ‘산업의 입체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5주기를 맞아 장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청운동 자택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5주기를 맞아 장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청운동 자택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여기에 힘을 보태는 이유도 분명하다. 첫째, 첨단 전략산업 육성이라는 국가 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수도권에 집중된 미래산업 인프라를 비수도권으로 넓힌다는 점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 AI·수소·로봇이라는 세 축을 한 곳에서 결합해보는 국내 최대급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금융기관 협의체에는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이 참여하고 있으며, 현대차 새만금 프로젝트에 맞춤형 금융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성장펀드 2차 메가프로젝트 후보군으로도 거론된다. 정부 지원의 의미는 단순히 돈을 대주는 데 있지 않다. 한국 경제가 어디에 국가적 우선순위를 두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정부 지원이 커질수록 현대차의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진다는 점이다. 정책금융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춰주는 장치일 수는 있어도, 기업의 책임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국민이 납득하려면 세 가지가 분명해야 한다. 첫째, 투자 일정과 집행 계획이 실제로 이행돼야 한다. 둘째, 지역에 남는 산업 생태계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 셋째, 공공 지원이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국가적 파급효과를 낳는 투자라는 점을 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로 약 16조원의 경제효과와 7만명 수준의 고용 창출을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숫자는 계획 단계에서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전북 지역의 산업 역량 강화와 청년 일자리, 협력업체 성장으로 실제 이어지느냐는 것이다.



특히 현대차는 전북 지역사회와 훨씬 더 폭넓게 소통해야 한다. 이 대목은 투자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기업이 지역에 들어와 대규모 개발을 할 때 가장 흔한 실패는 ‘좋은 계획을 세웠는데도 지역이 자기 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새만금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현대차의 사업이 전북도민의 미래와 연결돼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홍보 차원을 넘어선 상시 소통 구조가 필요하다. 전북도, 군산시, 지역 상공회의소, 대학, 직업계고교, 연구기관, 중소기업, 주민 대표와 연결되는 다층적 협의체가 있어야 한다. 투자 설명회 한두 번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어떤 일자리가 생기는지, 지역 청년은 어떻게 참여하는지, 협력사는 어떤 방식으로 선정되는지, 지역 기업의 납품과 공동개발 기회는 얼마나 열리는지, 생활 인프라와 환경 문제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전북도민의 참여 역시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변수다. 지역은 단순한 ‘부지 제공자’가 아니라 산업전환의 공동 주체가 되어야 한다. 새만금에 들어설 AI 데이터센터가 지역 대학과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연결되고,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가 지역 중소기업과 공급망 협력으로 이어지며, 수전해 플랜트와 태양광 사업이 지역 에너지 산업의 새 기반으로 확장돼야 한다. AI 수소 시티도 보여주기식 스마트도시가 아니라 주민이 체감하는 교통, 주거, 일자리, 교육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새만금은 ‘현대차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전북의 미래 프로젝트’가 된다.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사진연합뉴스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사진=연합뉴스]



사업의 시간표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현대차그룹 계획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와 태양광 발전시설은 2027년 착공, 2029년 완공이 목표이며, 수전해 플랜트는 2029년 1차 완공 뒤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는 2028년 착공해 2029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일정은 길다. 대규모 프로젝트일수록 발표 순간보다 실행 과정이 더 어렵다. 전력, 용수, 인허가, 물류, 인력 공급, 지역 수용성 같은 현실의 벽을 하나씩 넘어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정부는 규제 완화만 외칠 것이 아니라 기반 인프라와 행정 조정 능력을 보여줘야 하고, 현대차는 장기 프로젝트를 견딜 인내와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



정의선 회장에게 이번 새만금 투자는 두 개의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하나는 현대차가 과연 미래 산업 전환의 선두 기업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서 지역과 국가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이냐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는 기술과 자본으로 답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는 철학과 태도로 답해야 한다. 정부 지원은 프로젝트의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사회적 신뢰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결국 기업이 신뢰를 얻는 길은 지역과 이익을 나누고, 정보를 열고, 약속을 지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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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트북LM]


 

새만금은 오랫동안 가능성의 땅으로 불려왔다. 이제는 가능성만 말할 때가 아니다. 정의선의 결단이 진짜 성과로 이어지려면, 정부는 지원의 명분을 성과로 입증해야 하고, 현대차는 투자 이상의 책임을 져야 하며, 전북도민은 수동적 관객이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가 돼야 한다. 이 세 축이 맞물릴 때 비로소 새만금은 또 하나의 계획이 아니라 한국 산업지도의 새로운 축이 될 수 있다. 정부 지원은 날개다. 그러나 어디로 날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감이고, 얼마나 멀리 날아갈 지를 좌우하는 것은 지역과의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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