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호르메시스의 역설 …몸을 괴롭혀야 생명이 산다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을 오랫동안 들여다본 끝에 하나의 진실에 닿았다. 문명은 안락한 요람에서가 아니라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성장한다. 너무 순탄한 길에서는 창조의 근육이 굳어버리고, 너무 가파른 절벽 앞에서는 발을 내딛기조차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한때 통했던 방식에 집착하며 새로운 도전 앞에 눈을 감는 순간 문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이었다. 토인비가 역사의 켜 속에서 발견한 이 패턴은 비단 인류 문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 그 자체가 수십억 년에 걸쳐 써 내려온 원리다. 

약 27억년 전 시아노박테리아가 광합성을 시작하면서 대기 속으로 산소를 내뿜었다. 당시 지구에 살던 대부분 생물에게 산소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수많은 종이 그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일부 생명체들은 거대한 위협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고 독을 양분으로 바꾸는 길을 찾아냈다. 바로 호기성 호흡이다. 혐기성 발효보다 무려 18배나 많은 에너지를 뽑아내는 이 혁신은 복잡한 다세포 생명체의 눈부신 진화를 여는 열쇠가 되었다. 도전이 없었다면 진화도 없었다. 반면 동굴 속 물고기는 어느 순간 눈을 잃었다. 영원한 어둠 속에서 눈은 쓸모없는 장식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빼앗고 감염의 문을 여는 짐이었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더욱 극단적이다. 숙주의 품 안에서 손쉽게 양분을 취하는 기생충은 소화계와 감각기관은 물론 신경계까지 내려놓았다. 편안한 환경은 생명의 복잡성을 지워간다. 생물이 오래전부터 새긴 냉혹한 원칙은 '쓰지 않으면 잃는다(Use it or lose it)'이다. 진화가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온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다.
스트레스가 생명을 강하게 한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몸서리치며 피하려 한다. 그러나 생리학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르다. 적정 수준의 스트레스는 생명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련시킨다. 이 현상을 과학은 '호르메시스(hormesis·應耐性)'라 부른다. 가장 친숙한 예는 운동이다. 역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근섬유는 미세하게 찢기고 염증이 피어오르며 스트레스 호르몬이 몸 안을 달린다. 만약 이 상태가 멈추지 않는다면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회복이 시작되면 근육은 단순히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보다 더 굵고 더 강한 모습으로 다시 서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운동이 만들어내는 활성산소다. 노화의 주범으로 지목되어온 그 물질이 운동 중에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 세포의 방어 시스템을 깨워 강화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고용량 항산화제를 복용하면서 운동하면 오히려 운동 효과가 줄어드는 역설이 여기서 비롯된다. 몸이 스스로 단련될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셈이다. 

뼈도 마찬가지 원리를 따른다. 독일의 해부학자 볼프는 뼈가 받는 기계적 부하에 따라 그 구조를 바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볼프의 법칙'으로 불리는 발견이다. 무중력 환경에서 생활하는 우주비행사는 일주일에 1~2%의 뼈 밀도를 잃는다. 6개월의 우주 체류가 끝날 때면 지상에서 10년간의 노화로 잃는 것과 맞먹는 뼈를 잃고 돌아온다. 중력이라는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뼈를 유지해야 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반면 올림픽 역도선수의 요추 골밀도는 일반인보다 30~50%나 높다. 뼈는 도전을 받을수록 단단해지고 도전이 사라지면 스스로 무너진다. 

"성인의 뇌는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20세기 중반까지 정설처럼 받아들였다. 그 믿음은 이제 완전히 뒤집혔다. 뇌는 경험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평생에 걸쳐 조각된다 — 신경가소성이다. 런던 택시 운전사들 이야기는 유명하다. 런던 택시 면허를 얻으려면 수천 개의 거리와 명소 위치를 머릿속에 새겨야 한다. 신경과학자 엘리너 매과이어가 이들의 뇌를 MRI로 들여다봤을 때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후부가 일반인보다 유의미하게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타고난 차이가 아니었다. 살아온 경험이 뇌의 지형을 바꾼 것이다. 95세에 인공지능 공부를 시작해 98세에 'AI 이후의 세계'를 저술한 헨리 키신저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이라는 개념도 있다. 평생에 걸친 교육, 복잡한 직업 활동, 독서, 악기 연주, 사람들과 관계 같은 정신적 자극이 뇌 속에 완충지대를 쌓는다. 많은 시냅스 연결과 다양한 신경 경로를 확보해둔 뇌는 일부 영역이 손상되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기능을 이어받을 수 있다. 이중언어 사용자가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치매 발병이 평균 4~5년 늦다는 연구 결과는 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은퇴 이후 정신적 활동이 급격히 줄어들면 인지 쇠퇴 역시 가속화된다. 뇌에도 볼프의 법칙은 냉정하게 적용된다.

백세인들이 전하는 메시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이 말을 너무나 쉽게 때로는 위안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생물학은 이 오래된 체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버드대의 마리아 피아타론은 평균 나이 90세인 요양원 노인 10명에게 8주간 고강도 근력운동을 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근력이 평균 174% 증가했고 일부 노인은 보행 보조기구 없이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90세에도 근육은 자란다. 70대와 80대에도 운동으로 골밀도를 높일 수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70·80대 환자도 집중적인 재활을 통해 기능을 되찾는다. 나이는 한계가 아니다. 포기가 한계를 만든다. 근감소증은 노화의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 상당 부분은 노화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이 덜 필요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백세인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탁월한 유전자도, 특별한 식단도 아니었다. 평생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살아왔다는 것, 지역 공동체와 관계를 끊지 않았다는 것,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도전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80대 노인의 치사율이 20%에 육박했을 때 백세인들의 치사율은 5%를 밑돌았다. 그들이 고혈압, 당뇨, 암이 더 적었을 뿐 아니라 면역력을 꿋꿋이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삶이 던지는 도전 앞에서 응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세인 연구에서 또 하나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이들에게는 모두 삶의 이유가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야 할 이유, 누군가를 돌봐야 할 책임, 공동체 안에서 맡은 역할. 살아야 할 이유를 품은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훨씬 건강하게 살았다. 삶의 목적이 몸을 살아 있게 만든다. 

마음의 호르메시스

2002년 예일대 심리학자 베카 레비의 연구는 학계를 흔들었다. 노화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노인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노인보다 평균 7.5년을 더 살았다. 혈압, 흡연, 운동량, 체중 등 수많은 건강 변수들을 모두 고려한 이후에도 그 차이는 굳건히 남아 있었다. 결국 신념이 수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늙었으니 어쩔 수 없어'라는 생각 하나가 면역계를 서서히 허물고, 회복력을 갉아먹으며, 살아가려는 의욕을 잠재운다. 반면 '나는 아직 할 일이 있다'는 믿음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고 면역세포를 깨우며 몸의 회복 기제를 일으킨다. 신념은 뇌의 신경회로를 물리적으로 바꾼다.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 아직 배울 것이 남아 있다는 기대 — 이 세 가지는 전전두엽과 변연계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하여 의사결정 능력과 감정 조절력을 지탱한다. 강한 신념을 가진 노인은 역경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은 도전을 위기가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는 무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진정한 마음의 호르메시스이다.

생명의 본질은 쉼 없는 응전이다

기계는 쓸수록 닳는다. 그러나 생명은 다르다. 근육은 쓸수록 강해지고, 뼈는 부하를 받을수록 단단해지며, 뇌는 배울수록 정교해지고, 면역계는 도전을 거칠수록 단련된다. 생명은 마모의 원리가 아니라 강화의 원리를 따른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생명체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노화를 핑계로 도전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몸 안팎에서 밀려오는 스트레스 앞에 과감하게 맞서야 한다. 응전하지 않는 정체는 퇴화다. 도전이 없으면 유지도 안 된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노인들에게 낯선 위협이자 뜻밖의 기회다. 스마트폰, 인터넷, 소셜미디어, 인공지능은 배움의 대상인 동시에 세대의 경계를 허물고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다. 요리를 가르치는 70대 유튜버, 역사를 기록하는 80대 블로거는 시대의 물결에 기꺼이 응전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이다. 디지털 기기가 두렵다면, 그 두려움이야말로 지금 당장 넘어서야 할 도전이다. 외면하면 퇴화가 따라온다.

토인비가 문명의 쇠퇴를 '창조력의 상실'에서 찾았듯이 우리의 노화 역시 도전을 회피하는 순간부터 가속된다. 정년은 사회가 만든 제도일지 몰라도 생물학이 만든 제도는 아니다. 적절한 운동과 정신적 자극을 90세에도 이어간다면 몸과 뇌는 여전히 성장한다. 사회와의 연결, 목적의식, 그리고 강인한 신념은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묻는다. 오늘 어떤 도전을 선택했는가? 어떤 이웃과 연결되었는가? 어떤 새로운 것을 배웠는가? 어떤 신념으로 하루의 문을 열었는가? 생명의 본질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응전하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그 원리는 더욱 절실해진다. 도전에 연령한계란 없다. 쉼 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 "나는 아직 여기 있다" 고 세상을 향해 선언하는 것 — 그것이 생명이 수십억 년간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길이며,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유일한 진리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