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의 중동 진단] 오일쇼크를 넘는 위기, 이번엔 무엇이 다른가

중동의 전쟁이 이제는 세계 경제의 혈관을 직접 겨누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48시간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소를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경고한 것은 단순한 말폭탄으로만 보기 어렵다. 이미 호르무즈 해협은 극심한 불안정 상태에 들어섰고, 국제 유가와 가스 시장은 급등세로 반응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이번 사태를 두고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안보 위기”라고 규정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닮았다는 말이 나온다. 맞는 면도 있다. 중동발 충격이 세계 물가와 산업, 외환시장까지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과거의 오일쇼크와는 성격이 다르다. 1970년대 위기가 산유국의 감산과 금수 조치에서 비롯된 ‘가격 충격’이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해상 수송로 봉쇄와 에너지 인프라 파괴, 군사적 보복이 한꺼번에 얽힌 ‘시스템 충격’에 가깝다. 가격만 뛰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 자체가 끊길 수 있다는 점이 더 위험하다.
 
 오만 무산담 주와 인접한 라스알카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 해역의 화물선들 사진로이터
3월 오만 무산담 주와 인접한 라스알카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인근 걸프 해역의 화물선들. [사진=로이터]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가스 해상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핵심 길목이다. 이 좁은 바닷길이 막히면 단지 유가가 오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선박 운항 차질, 보험료 급등, 정제와 발전용 연료 수급 불안, 화학·철강·해운 등 연관 산업의 비용 상승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벤치마크 유가는 배럴당 110달러를 넘었고, 일부 중동산 원유 가격은 훨씬 더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전쟁 양상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디에고 가르시아의 미·영 기지를 향해 장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고, 이스라엘군의 에얄 자미르 참모총장은 이 미사일의 사거리를 두고 “베를린, 파리, 로마가 직접 위협권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능력이 중동을 넘어 유럽 안보 문제로 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란 나탄즈 핵시설 피격과 이스라엘 디모나 인근 피격 역시 상징성이 크다. 전쟁이 더 이상 군사기지나 국경지대에 머물지 않고 핵시설과 에너지 기반시설, 산업 인프라를 겨냥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은 끝난 뒤에도 후유증이 길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이 “설령 해협이 다시 열린다 해도 손상된 유전과 가스전을 복구하는 데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세계가 이번 위기의 성격을 아직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이번 사태를 중동 특유의 지정학적 소용돌이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IEA 수장이 직접 1970년대 오일쇼크와 2022년 유럽 가스위기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라면, 이는 단순한 지역분쟁이 아니다. 에너지, 물가, 운송, 식량, 외환이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위기다. 이미 일부 국가는 비축유 방출과 절전 대책, 연료 가격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국은 이런 위기에 특히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 경제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산업 구조는 제조업 중심이다. 원유와 LNG 수입선도 중동 비중이 작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흔들리면 정유·석유화학은 물론 철강, 시멘트, 발전, 항공, 해운까지 줄줄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가가 뛰고 생산비가 오르면 수출 경쟁력도 약해진다. 에너지 위기가 곧 산업 위기이고, 산업 위기가 곧 성장률과 고용의 위기로 번지는 구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항구에 컨테이너선들이 정박해 있다 사진EPA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항구에 컨테이너선들이 정박해 있다. [사진=EPA]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에너지 안보를 외교·산업·국방을 아우르는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단순히 전기요금이나 연료비의 문제로 다뤄서는 안 된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은 에너지 공급선이 곧 안보선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둘째, 원유와 LNG 조달선을 더 넓혀야 한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아프리카, 중남미, 호주 등과의 장기 계약과 우회 조달 능력을 키워야 한다.
 
셋째, 전략비축 시스템을 실전형으로 바꿔야 한다. 비축량 숫자만이 아니라 실제 위기 때 얼마나 빨리 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넷째, 전원 믹스를 보다 현실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동시에 안정적 기저전원 확보를 위한 원전 활용 문제도 이념이 아니라 안보와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냉정하게 봐야 한다. 비롤 사무총장이 이번 위기가 재생에너지와 원전 확대, 전기차 확산을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국가의 미래도 없다.
 
 
21일 영국 런던 중심부에서 이란 폭격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 행진에 참가한 시위대가 이란 국기와 배너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AFP
21일 영국 런던 중심부에서 이란 폭격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 행진에 참가한 시위대가 이란 국기와 배너,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AFP]

1970년대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의 체질을 바꿨다. 연비 기준이 강화됐고, 원전이 늘었고, 산업 구조가 재편됐다. 이번 위기도 그에 못지않은 변화를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에는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르고, 충격의 범위가 더 넓다. 전쟁은 중동에서 벌어지지만, 대가는 전 세계가 나눠 치르게 된다. 에너지 수입국 한국이 이를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는 이유다.
 
 
오일쇼크를 넘는 위기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표현의 강도가 아니라 대응의 속도다. 낙관은 가장 값비싼 착각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지금부터라도 전방위 에너지 대책에 착수해야 한다. 공급선 다변화, 비축 확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현실적 조합, 산업별 비상대응 체계 점검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일은 곧 경제 안보를 지키는 일이다. 이번 위기의 진짜 교훈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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