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영문판 『한류문화사전(Encyclopedia of Hallyu)』은 시의적절하다. 2024년 국문판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번 영문판은 K-콘텐츠를 비롯해 한국의 생활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세계인이 직접 읽는 최초의 한류 전문 영문 백과사전이다. 한류를 ‘소개’하는 데서 나아가 ‘설명하고 정리’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분명하다.
사전에는 BTS부터 김밥까지, 한류를 구성하는 347개의 표제어가 수록됐다. K-팝과 드라마, 영화 같은 대표적 콘텐츠는 물론 음식과 패션, 주거, 장소, 놀이 등 생활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한류 확산의 배경과 특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600여 장의 사진 자료와 함께 국내외 연구자 129명이 참여해 학술성과 전문성을 갖춘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작업이 한류의 ‘현재’만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류는 전통과 단절된 채 갑자기 등장한 문화가 아니다. 오늘의 K-팝과 K-콘텐츠는 한국 사회의 생활양식과 정서, 오랜 문화적 축적 위에서 형성됐다. 좌식 문화와 음식 문화, 공동체 감각 같은 요소들이 함께 설명될 때 한류는 비로소 맥락을 갖는다. 전통을 박제하는 대신, 현재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변주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이번 사전의 접근은 K-레거시를 고민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문화의 세계화는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확산 이후에는 반드시 정리와 기록의 단계가 필요하다. 이를 소홀히 하면 한류는 타인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타인의 기준에 따라 소비되는 대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문화 주권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자기 문화를 스스로 설명하고 정의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영문판 『한류문화사전』 발간은 이런 현실 인식 위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늦었지만 필요했고, 크지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한류의 성공을 넘어, 그 성취를 전통과 연결해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제 기록과 제도의 형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한류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히트가 아니다. 더 깊은 축적이며, 더 단단한 연결이다. 전통을 지키면서 현재를 설명하고, 현재를 기록해 미래로 넘겨주는 일. 그것이 지금 K-레거시가 요구받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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