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중국 군부 2인자이자 시진핑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알려진 장유샤 중앙군사위원회(중군위) 부주석이 부패 혐의로 숙청된 사실이 지난 1월 24일에 전해졌다. 이를 두고 시진핑 정권이 안정한지 아니면 불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들의 숙청 이유를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임명을 받자마자 연쇄적으로 숙청된 사실만으로도 치열한 내부 권력 투쟁의 결과로 판단할 수 있는 정황적 의구심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장유샤, 허웨이둥, 류전리, 리샹푸, 먀오화 등은 시진핑파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들의 축출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이 숙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실어 준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마오쩌둥의 격언에 비춰보면 군부 내 갈등은 정권의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점에서 시진핑 정권의 장기 집권이 무난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작년 여름에 시진핑의 실각설이 난무했다. 이런 ‘소문’이 잠잠해지자 군부 2인자이자 시진핑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숙청되었다. 정황적으로 이들 간 권력 투쟁을 의심할 만하다. 더군다나 중국 최고 군사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6명 중 부주석 2명(서열 2위와 3위) 이하 위원 3명이 연쇄적으로 숙청되면서 군부 내 불안과 동요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들을 따르던 영관급 장교와 장군 수십 명 또한 부패 혐의로 체포된 사실 때문이다. 최고 계급 상장급에 장군이 보통 30여 명 있지만 지금은 4명 남았다. 육군 상장은 한 명도 없다. 또 하나 특이 사항은 작년 12월 22일 열린 해방군 상장 진급 의식에서는 장유샤 측근들이 결석한 점이다. 가령, 육군 부사령관 자오위, 무장경찰 부대 대리 사령관 차오쥔장, 해군 대리 정치 위원 렁샤오제 등이다. 이처럼 시진핑의 장유샤 ‘손절’ 작업은 작년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심각성은 이들이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숙청된 사실 때문이다. 장유샤와 함께 중국인민해방군의 모든 군사 작전을 전담하는 류전리 연합참모부 참모장도 2023년에 임명되었다. 같은 시기에 서열 3위로 중군위 부주석에 임명되었던 허웨이둥은 작년 10월에 숙청되었다. 그 이전에는 리샹푸 중군위 위원이자 국방부 장관이 2023년 7월에, 먀오화 정치공작부 주임이 2024년 11월에 숙청되었다. 이들 모두 임기는 2027년까지였다. 시진핑 3기가 2022년 11월에 출범하면서 중군위 위원 6명 중 5명이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청산되었다. 이들 중 먀오화 정도를 제외하곤 장유샤파라고 할 수 있다.
생존자는 장성민 위원으로 그는 작년 10월에 허웨이둥 부주석 자리를 꿰찼다. 아직도 나머지 인사들의 후임자는 임명되지 않은 상태다. 일설에 의하면 이들의 공백을 다양한 군과 분야의 인사로 채워질 것으로 관망한다. 여기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최근의 인사다. 중군위 서열 7위인 장성민이 부주석(2위)으로 승진했다. 그는 로켓군 부대 출신이다. 둥쥔 국방부장은 해군 출신이지만 중군위에는 발탁되지 않았다. 전구 사령관직에도 모두 공군 출신이 임명되었다. 과거 육군 중심에서 탈피하는 모습이다. 가령, 5개 전구 중 중부전구 사령관 한성옌과 동부전구 사령관 양즈빈 모두 공군 출신을 임명했다. 또한 베이징 위수구(중국 인민해방군 중부전구 소속 수도 방위 담당 육군 중심의 군대) 정치위원 주준도 공군 출신이다.
지금 상황에선 군부에 이례적인 정풍운동을 진행한 시진핑의 속내와 앞날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정풍운동을 단행한 시진핑의 전략적 계산의 근원을 볼 수 있겠다. 비록 시진핑의 구상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중국 역사 속에서 유사한 사례와 경험을 근거로 유추는 가능하겠다. 중국의 정치, 외교, 군사 분야에서 많은 전략 개념과 그 연유가 중국의 유구한 역사에 근거하고 파생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고로 강한 중앙집권제로 나라를 통치한 전통이 있다. 오늘날 시진핑 정권을 강한 중앙집권제라고 외부 세계에서 비판해도 중국 내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중앙집권제에서 중앙정부가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는 세력은 향군으로 무장한 지방 권력이다. 지방 정권이 강한 무력을 갖추면 중앙정부의 권력에 도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무력화된 향토 세력은 민의를 동원해 봉기와 정권 전복을 시도한 적이 무수했다. 향토 세력은 연합과 연대를 통해 더 큰 세력으로 거듭나고자 한 시도도 수없이 했다. 군벌이라는 개념이 중국 근현대사에서 출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의 삼국 시대 이후 중화민국 탄생까지 중국은 수많은 봉기와 난, 정권 전복과 통일 등을 겪었다. 아편전쟁 이후인 중국 근대사에서도 수많은 봉기가 일어났고, 그 절정은 태평천국의 난(1861), 신해혁명(1911)에 이르렀다.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탄생했으나 막강한 군벌은 청산되지 않았다. 군벌 청산에 동의한 위안스카이는 중화민국 초대 임시 총통 쑨원과 연합한다. 위안스카이는 군벌 척결의 대가로 중화민국 총통 자리를 받았다. 총통 자리에 오른 그는 1914년에 황제로 영구적인 군림을 위한 개헌을 단행했다. 1916년에 병사하면서 그는 꿈을 이루진 못했다. 이처럼 중국 역사에서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인물과 세력이 중앙정부와 왕조에 가장 큰 위협적인 요소였다. 마오쩌둥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역사적 교훈으로 중국인들이 자부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중국 고유의 경험은 아니다. 서구 제국사를 보면 이런 현상을 즐비하다. 로마, 그리스, 오토만, 프러시아 제국 등도 무력으로 건국되었다. 미국 또한 독립전쟁을 진두지휘한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시진핑 3기의 중군위가 장유샤를 중심으로 구성된 점이 아마도 숙청을 불가피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장유샤가 시진핑과 개인적인 친분이 아무리 강해도 갈등이 생기면 관계 회복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선대에까지 올라갈 수 있다. 시진핑의 부친(시중쉰)과 장유샤의 부친(장쭝쉰)은 국공내전(1927~1937), 항일전쟁(1937~1945) 등에 참전하면서 공산혁명 1세대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홍이대(紅二代)’라고 할 만큼 어찌 보면 ‘태자당’ 출신에 견줄 만한 가족력을 공통으로 가졌다.
이런 공통된 개인적 배경의 이유로 장유샤가 발탁된 것으로 보이며 시진핑은 아마도 그가 추천한 인사를 신뢰하고 중군위 위원으로 2022년에 모두 채택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 인물을 중심으로 양산된 군부 내 파벌 정치가 시진핑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겠다. 군부 내에서 군사적 이유로든, 정치적인 이유로든 파벌 형성은 중국 역사의 군벌 정치를 재연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장유샤가 위안스카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막강한 군사적 정치 기반으로 시진핑을 압박하면서 통치자 자리를 넘볼 만하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장유샤파와 시진핑 간 어떠한 갈등이 일어났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정황적으로나 심증적으로 무수한 ‘설’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명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밖에 없는 난무한 설 때문이다. 대부분 다 설득력 있어 보이고 납득이 가는 대목도 적지 않다. 권력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시진핑을 포함한 중군위 위원 7명 중 5명이 장유샤파라면 어떠한 이야기도 시진핑을 궁지로 몰아넣는 데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일개 설에 따르면 이들이 5대 1로 시진핑의 대만 침공을 반대했다는 둥, 장이 핵무기 정보를 미국에 유출했다는 둥 말이다. 물론 장성민이 숙청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장유샤와 협력해 중국의 핵무기 미사일 정보를 유추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핵무기가 집중 배치된 중구와 동부 전구 사령관이 해임된 결과로도 장유샤와의 유착관계를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부정부패를 이유로 군부에서 이 같은 규모의 정풍운동은 이례적이다. 따라서 시진핑의 속내와 앞날에 대한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자아내고 있다.
시진핑 정권 3기 출범 이후 군부의 연쇄적인 숙청 사건에 대한 평가는 사태의 정보 부족으로 대조적인 양상을 보인다. 시진핑 정권이 더욱 공고화되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공고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후자는 시진핑 정권의 위태로움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은 일희일비하는 정권이 아니다. 장기적인 포석을 두고 지난 14년 동안 통치 기반을 닦아왔다. 이번 사태도 시진핑 4기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장유샤가 올해 73세로 68세 퇴직선을 넘은 지 오래다. 진작에 퇴임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권 공고화를 위해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수 있지만 68세는 은퇴한다)’라는 잠규칙이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2022년 3기 출범 당시 이미 69세에 접어들었다. 규칙에 따라 정권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능상능하(能上能下), 즉 능력이 있으면 올리고 능력이 없으면 내린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영위를 위한 결정이 2018년에 중군위 부주석으로 발탁된 장유샤의 유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커지자 시진핑의 결단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처사가 되었다.
시진핑은 4기 연임을 위해 군부의 세대 교체가 불가피하다. 이런 이유로 1950년에서 1965년 사이에 출생한 인물들에 대한 숙청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이들은 아마도 2027년까지 임기를 채우려 했는지 모른다. 이를 기반으로 어떠한 정치적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알 순 없지만 시진핑에게 불안감 또는 위협감을 줄 법했을 것이다. 특히 중군위의 권력 구조에서부터 수적 열세를 보이는 시진핑에겐 수용하기 어려운 정치 현실로 보인다. 그가 측근에게 비정하게 칼을 든 이유였는지 모른다. 시진핑의 전략적 포석을 입증하는 사례가 최근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 1965년 이후 출생한 이들을 그가 장군으로 승진시켰다. 올해 만약에 중군위의 빈자리가 채워지면 그의 구상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특히 대규모 정풍운동으로 군 내에 저하된 사기와 유발된 불만을 어떻게 진정시키는지가 그의 권위 유지에 관건이 될 것이다.
시진핑은 큰 어려움을 겪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사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의 권력이 고전하면 지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지방정부와 민의가 결집하면서 무장화하는 조짐이 보였을 것이다. 군벌의 출현도 있었을 것이다. 지방정부, 민의, 군부가 일심동체로 움직이면 민의나 봉기가 뒤따랐을 것이다. 아직은 그러나 그러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 정권이 공고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중군위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우는지가 시진핑 정권의 풍향계가 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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