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 다음이다. 민생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선언 뒤에 곧바로 “사법개혁 법안의 일방 처리를 포기해야 한다”거나 “필리버스터도 불사하겠다”는 조건과 압박이 따라붙는 현실은 정치가 여전히 국민이 아니라 계산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은 법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 등 사법개혁 법안을 잠시 미뤄두고 이번엔 반도체 특별법, 간첩법 개정안 등 여야 간 쟁점이 비교적 적은 민생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입법의 순서를 조정한 것 자체는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엔 민생, 다음엔 사법개혁”이라는 이중 일정은 국민에게 또 다른 정치적 셈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민주당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도 민생법안 처리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밝히면서도, 민주당의 향후 입법 계획을 문제 삼아 필리버스터 카드를 다시 꺼내 들 태세다. 민생법안까지 무제한 토론의 대상이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입법 독주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민생을 볼모로 한 대치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여야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기본 원칙은 단순하다. 민생 법안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국회의 의무라는 점이다.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면 그 정당성과 속도, 절차를 놓고 별도로 논쟁하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공개적 토론과 수정으로 대응해야지, 민생 처리 자체를 협상 카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더욱이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한 이른바 ‘필리버스터 제대로법’까지 거론되는 상황은 국회가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규칙 싸움에 매달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의 힘으로 막아서는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국회에 대한 신뢰는 더 빠르게 무너진다.
지금 국민이 국회에 기대하는 것은 정교한 정치 기술이 아니다. 민생 법안은 민생대로 처리하고, 사법개혁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숙의를 거쳐 다루는 당연한 분리의 원칙이다. 그 단순한 상식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느 쪽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는 전략이 아니라 책임이다. 민생 앞에서 조건을 달고, 원칙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정치라면 국회는 다시 한 번 존재 이유를 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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