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사이트] 런던 '슈퍼 대사관' 논란, 축구장 3개 규모 외교시설인가 전략 거점인가

  • — 영국의 선택과 국제 첩보전의 그림자

20일 영국 런던 동부에 위치한 로열 민트 코트Royal Mint Court의 모습 이곳은 중국이 건립을 추진 중인 초대형 대사관 예정지로 영국 정부가 옛 영국 조폐국 부지인 해당 지역의 재개발을 승인했다 사진로이터
20일 영국 런던 동부에 위치한 로열 민트 코트(Royal Mint Court)의 모습. 이곳은 중국이 건립을 추진 중인 초대형 대사관 예정지로, 영국 정부가 옛 영국 조폐국 부지인 해당 지역의 재개발을 승인했다. [사진=로이터]


영국 정부가 런던 로열 민트 코트(Royal Mint Court) 부지에 중국의 초대형 대사관 건립을 승인한 결정은 단순한 외교 행정 절차의 마무리가 아니다. 이곳은 과거 영국 파운드화를 생산하던 조폐국 터라는 상징성을 지닌 데다, 인근에 런던 금융가와 연결되는 주요 통신 인프라가 지나가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 시설은 축구장 3개를 합친 것에 맞먹는 약 2만㎡ 규모로, 서유럽 최대급 외교 시설이다. ‘대사관’이라는 명칭보다 하나의 복합 외교 단지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바로 이 압도적인 물리적 규모가 정치·안보 논쟁의 출발점이다.

제1야당인 보수당이 “영국의 상징적 공간과 안보적 민감성을 동시에 양보한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미국 안보 커뮤니티 일부에서 “금융·정보 생태계에 대한 구조적 접근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쟁점의 핵심은 건축 허가 자체가 아니라, 현대 외교공관이 갖는 법적 보호와 통신 자율성, 출입 통제권이 거대한 물리적 공간과 결합할 때 발생하는 ‘잠재성’에 있다.

외교공관은 국제법상 보호되는 공간이다. 치외법권적 성격, 외교 행낭의 면책, 통신 보호는 국가 간 외교의 기본 장치다. 그러나 바로 이 제도적 보호가 정보 활동의 관심을 끌어온 것도 역사적 현실이다. 냉전 시기 미·소 대사관이 상호 정보전의 전초기지로 기능했던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으며, 탈냉전 이후에도 외교 공관은 기술·산업·정책 정보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의 공간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치 구조의 상수에 가깝다.

중국과 관련해서도 여러 국가에서 외교·영사 네트워크를 둘러싼 안보 논란이 반복돼 왔다. 미국에서는 중국 외교 인사들의 연구 정보 접근 사건이 기소된 전례가 있고, 캐나다와 호주에서는 정치권·학계에 대한 영향력 행사 의혹이 공론화됐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해외 경찰 활동 의혹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이 곧바로 런던 대사관을 동일 선상에 놓는 직접적 근거는 아니지만, “외교 공간은 정보전의 잠재적 무대”라는 국제 안보의 상식을 다시 상기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측은 런던의 금융 인프라와 인접한 초대형 외교 시설이 동맹 정보 생태계의 일관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제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각은 기술적 침투 가능성 그 자체보다, ‘잠재적 취약성’에 대한 인식이 동맹 간 정보 신뢰에 미칠 파장을 더 중시한다. 금융은 신뢰 위에 세워진 시스템이며, 취약성에 대한 인식만으로도 심리적·시장적 파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결정을 가치 판단이라기보다 외교적 상호주의와 실리 계산의 결과로 해석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투자 유치와 시장 접근 확대가 절실하고, 동시에 중국 내 영국 외교 공관과 관련된 현안도 관리해야 한다. 상징적 외교 공간은 종종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된다. 런던의 한 부지는 건축 문제가 아니라 관계 재설정의 카드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식 시각에서 보면 이 사안은 민주주의 국가가 위험을 어떻게 정의하고 관리하는가에 대한 시험이다. 오늘날 세계는 냉전식 봉쇄가 작동하기 어려운 상호의존 구조다. 영국이 중국 대사관 건립을 전면 차단하지 않고 조건부로 승인한 것은 “위험을 0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제도와 감시로 위험을 통제하겠다는 접근으로 읽힌다. 이상적 안전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위험’을 택한 현실주의다.

다만 기본·원칙·상식의 관점에서 분명한 점도 있다. 첫째, 위험은 존재한다. 둘째, 위험은 과장될 수도 있다. 셋째, 국가의 역할은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범위로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이 시설은 축구장 3개 규모의 거대 단지인 만큼, 물리적 범위가 넓을수록 보안 관리의 복잡성도 커진다. 보안 구역 설정, 전자·통신 차단 장치, 인력 출입 통제, 정보기관의 상시 점검 체계가 실제로 작동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런던 ‘슈퍼 대사관’ 논쟁은 한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서방 세계가 중국과 공존하는 방식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냉전적 차단은 비현실적이고, 무조건적 개방은 순진하다. 남는 길은 참여하되 감시하고, 협력하되 경계하는 중간 지대다. 영국은 그 길을 택했다. 이제 시험은 시작됐다. 승인 결정의 옳고 그름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향후 수년간의 보안 관리 능력과 위기 대응 체계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국제 첩보전의 시대에 외교 시설은 더 이상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와 경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전략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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