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훈련은 외교 이벤트에 따라 꺼내고 접는 정책 카드가 아니다. 도로와 전력이 멈추면 일상이 마비되듯, 훈련의 일관성이 흔들리면 억지력은 즉각 약화된다. 안보의 기본은 예측 가능성이다. 동맹은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 위에서 작동하고, 억지력은 상대가 우리의 대응을 미리 계산할 수 있을 때 성립한다. 훈련을 정치 일정의 부속물로 다루는 순간, 신호는 준비의 지속성이 아니라 변동성으로 읽힌다.
국내외 사례는 이 상식을 분명히 보여준다. 냉전 시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미·소 간 긴장이 완화되는 국면에서도 연합훈련을 중단하지 않았다. 협상과 대화는 이어졌지만 대비태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결과 유럽에서의 군사적 균형은 유지됐고, 오히려 협상은 안정적인 틀 안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대화가 훈련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훈련이 대화의 안전판이 된 셈이다.
이스라엘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상시적 위협 속에 놓인 이 나라는 최신 무기보다 반복 훈련으로 축적된 숙련을 억지력의 핵심으로 삼아 왔다. 전쟁을 원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들의 군 내부에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훈련에서 흘린 땀은 전장에서 흘릴 피를 줄인다.” 이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전략의 언어다.
안보의 또 다른 기본은 준비의 누적성이다. 전력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계획과 훈련, 숙련이 쌓여 신뢰가 된다. 핵심 전력 확보와 같은 중장기 과제일수록 오늘의 일관된 훈련이 전제다. 오늘의 흔들림은 내일의 공백으로 돌아온다.
군사분계선 관리, 우발 충돌 방지, 외교적 소통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대비태세의 보완이지 대체가 아니다. 오인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준비는 더 단단해야 한다. 준비가 견고할수록 신호는 명확해지고 계산 착오는 줄어든다.
결론은 분명하다. 한미연합훈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논쟁의 대상도 아니다. 국가 생존을 지탱하는 인프라다. 안보에서 유연성을 말하기 전에 지켜야 할 것은 기본이고, 기본의 핵심은 원칙이며, 그 원칙의 실체는 흔들리지 않는 준비와 신뢰의 일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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