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칼럼] AI·로봇 시대, 소유자사회 구상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지난 4일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인베스트 아메리카 프로그램' 가동의 마중물이 될 민간 자본 참여를 보도했다. 델 테크놀로지스의 창업자 마이클 델 부부가 62억 5000만 달러를 트럼프 계좌(Trump Accounts) 활성화를 위해 기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트럼프 계좌는 금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대규모 세제·지출 법안인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의 중 하나인 본 프로그램은 2025년 1월 1일부터 2028년 12월 31일 사이에 출생하는 모든 미국 신생아에게 연방 정부가 1000달러의 시드머니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이다. 지급된 자금은 아동이 만 18세가 될 때까지 인출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S&P500 지수 등 미국 주식 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에만 투자된다. 이는 미국 정부가 미국서 태어난 아동을 미국 증시 투자자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 구축 실험의 하나로 평가된다.
 
AI와 로봇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노동시장은 구조적 전환점에 서 있다. 대규모 자동화는 제조업, 물류, 금융, 공공부문을 넘어 전문직·사무직 분야까지 확장되고 있고, 노동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일자리 감소가 서서히 진행될 것이라는 초기 예측과는 다르게, 고도화된 AI 모델과 로봇 기술은 대체 속도를 가속시키고 있다. 이 변화는 결국 근로소득의 감소로 이어지고, 기존 사회보장 체제와 경제구조에 심대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의 대응은 실효성이 낮아지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경제·사회 시스템의 재설계가 요구된다.
 
소유자사회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다. 소유자사회는 모든 국민이 일정한 자본 자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여, 근로소득이 감소하는 시대에도 자본소득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삶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기술혁명으로 발생하는 부가 특정 기업이나 소수 자본가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국민 모두가 자본주의 시스템의‘주주’가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 사회와는 다르다. 기본소득이 소비 보장에 초점이 있다면, 소유자사회는 부의 축적과 기회의 평등이라는 장기 목표를 지닌다.
 
소유자사회로의 전환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첫째, 출생 시 또는 청년기에 기초자산계정을 제공하여 장기 투자 기반을 마련하는 제도이다. 국가가 일정 금액의 초기자본(seed money)을 투자 계정에 적립해 주고, 교육·주거·노후 준비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기본소득이 즉시 소비로 이어지는 소득이전이라면, 기초자산계정은 장기적 자산축적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점이 차별적이다. 둘째, 국민 공유형 AI·로봇 배당펀드를 도입해 기술혁명으로 발생하는 초과이익을 국민 전체가 나누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기금형 퇴직연금의 확대를 통해 근로자가 생애 동안 자본시장 수익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에게까지 이러한 구조를 확장하면 근로소득 기반이 약화되는 시대에도 퇴직소득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넷째, 국민연금을 적립금 없이 운영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적립방식을 영속적으로 유지가능하도록 선제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노후 연금을 세대간 부양 개념이 아닌 근로기간과 연금수급기간을 통합한 생애소득 개념으로 만드는 것으로 소유자사회로의 전환의 근간이 될 수 있다.
 
소유자사회 모델의 실현 가능성과 수용성에 있어서 관건은 재원조달 방안이다. 기술기업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환수하는 방식은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국제적으로 이미 유사한 제도적 기반이 존재한다. 디지털세, 데이터 이용료, 플랫폼 규제, 기술 독점 완화 정책 등은 이미 OECD와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제도화가 진행 중이다. 또한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제조업 중심 구조로 인해 AI·로봇 자동화의 충격이 더욱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면, 기술혁명으로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를 사회적 안전망과 자산 축적에 사용하는 것은 급진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보수적 접근 방식으로는, 기업의 초과이익을 직접 세금으로 환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부·ESG 투자·공동펀드 조성·세제 인센티브 등을 통해 민간도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데이터는 국민 전체가 생성한 공공적 자원이며, AI 산업은 사회가 구축한 정보·교육·언어·문화 기반 위에서 성장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기술혁신의 사회적 기여분을 정당하게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AI·로봇·데이터 기반 산업의 이익 일부를 국민 전체와 공유하는 방식은 정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다.
 
소유자사회는 근로소득이 줄어드는 시대에 국민 스스로가 자산소득을 통해 안정된 삶을 영위하도록 만드는 중장기 전략으로 검토될 수 있다. 기술혁명이 경제구조를 바꾸는 속도를 정책이 따라잡지 못한다면 사회적 불안정과 불평등은 확대될 것이다. 소유자사회는 이러한 위험을 기회로 전환해, 국민 모두가 기술혁명의 주체이자 수혜자가 되는 체제를 구축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미래 경제는 근로소득 중심에서 소유와 배당·투자·자본소득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 모두가 그 흐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산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AI·로봇 혁명 시대에 선택 가능한 대안 중의 하나로 소유자사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가 왔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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